[생활 속 과학이야기] 식물에서 먹는 백신 뽑는다
입력 2010-05-21 17:36
백신(Vaccine)은 질병 예방 차원에서 인류 복지에 지대한 공헌을 한 분야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전 세계를 휩쓸었던 신종 플루도 백신 접종을 통해 결국 불길이 잡혔다.
과학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이런 전염성 질병 뿐 아니라 암 같은 질환까지도 예방 백신의 적용이 가능해지고 있다. 백신은 항원(병원체)을 약하게 만들어 몸에 주입, 항체를 형성케 함으로써 그 질병에 저항, 면역성을 갖게 하는 의약품이다.
그런데 기존에 널리 알려진 백신 접종 방식은 주사기를 사용한 방법이다. 주사기 접종 방식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 먼저 주사기를 통한 감염. 주사기를 1회만 쓰고 폐기 처리하면 감염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물자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선 주사기를 한번만 쓰고 폐기하라는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또 혈관을 찾아 주사를 놓는 방식은 의사와 간호사 같은 의료 전문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고급 인력 역시 개도국에는 부족하다. 주사 맞기에 대한 두려움은 선진, 후진국을 떠나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백신을 음식처럼 먹게 된다면 어떨까.
‘식물 유래 경구용 백신’ 개발 연구는 1990년대 초 시작됐다. 바로 ‘주사용 백신’의 보편적 거부감 극복과 개도국 어린이를 위한 대체 백신 개발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식물시스템공학연구센터 김현순 박사는 “미생물 발효나 동물의 세포 계통에서 생산 해온 전통적 백신 생산 시스템의 문제점(고가 생산설비, 동물 오염원에 대한 안전성 등)을 극복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식물 생명공학의 발전이 식물 유래 백신 개발에 한몫하고 있다. 원리는 이렇다. 대상 식물의 잎 등에 바이러스 등 질병의 원인(항원) 유전자를 주입, 똑같은 항원 단백질을 발현하는 ‘형질 전환 작물’로 만든다. 이어 조직 배양 등을 통해 대량 증식한 뒤 동결·건조·가공해 정량을 위한 캡슐화하는 과정을 거쳐 백신 의약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이 먹으면 몸에서 질병에 대한 항체가 형성된다.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감자와 토마토, 바나나, 벼, 담배, 옥수수 등을 대상으로 식물 백신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미국에서는 감자에서 B형 간염과 설사병(LTV) 백신을 개발, 사람 대상 임상시험도 진행했다. 국내의 경우 김현순 박사가 감자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와 B형 간염 바이러스의 항원 단백질을 발현하는 ‘형질 전환 감자’를 개발, 현재 동물 실험 단계에 있다. 먹는 노인성 치매 백신, 먹는 B형 간염 백신 개발에 한발 더 다가간 것이다. 김 박사는 “규격화, 안정화, 용량 및 용법 개발 등 해결해야 할 사항이 있으나 반복실험을 통해 검증된다면 식용 백신으로 질병 예방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