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 출간한 신경숙
입력 2010-05-21 17:27
“새벽 세시에 깨어나 아침 아홉시까지 책상에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요가원에 다녀와서 점심을 지어 식구와 먹고 어쩌면 조금 더 잘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는 사이에 소설은 완성되겠지요. 여러 개의 종이 동시에 울려 퍼지는 것 같은 사랑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서울 평창동에 살고 있는 소설가 신경숙(47)이 지난해 하반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눈에 들어오게 하는 독백이다. 작품을 밀고 나가는 신조 같은 걸 내걸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이자 독자와의 약속 같은 것이다. 그가 지난해 6월부터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연재한 장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문학동네)를 단행본으로 묶었다. 140만부 이상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 이후 그가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던 이 소설의 비밀은 ‘새벽’에 있다.
“작품 속의 화자들이 새벽 거리를 걸어다니고 새벽 시간에 서로를 찾아다니거나 새벽에 내리는 눈을 보고 새벽 빗소리를 듣고 새벽에 어디선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풍경이 잦은 것은 이 작품을 쓰고 있던 시간의 영향일 것이다.”
그가 꼬박 6개월 동안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마주한 것은 고독과 불안 그리고 절망의 터널을 지나 온 청춘들의 자화상이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추적해가는 작품이지요. 네 개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그런 작품 말이에요. 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아마 한 이야기가 한 이야기를 찾아서 계속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가 될 거에요.”
작품 속 화자인 ‘나’ 윤과 대학 친구인 명서, 명서의 어릴 때부터의 친구 미루, 윤을 짝사랑하는 고향 친구 단이 그가 말하는 네 개의 종소리다, 이들 청춘들에게 폭풍처럼 밀려온 ‘아름답고 찬란한 열병’이 작가 특유의 감성적인 필치로 펼쳐진다.
엄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휴학했던 윤은 학교로 돌아와 만난 미루와 명서에게 마음이 끌린다. 미루는 바로 제 눈 앞에서 언니가 분신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정신적 불안에 빠져 있다. 윤과 명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미루와 단이 죽음을 택하면서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헤어진다. 열병처럼 앓은 청춘의 한 시절은 그렇게 잊혀져 갔지만 윤과 명서는 8년이 지난 후 대학 은사가 중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만나 함께 은사를 찾아간다.
소설의 배경은 대학생들의 가두 시위와 진압 전경, 최루탄 등에서 알 수 있듯 1980년대 그 즈음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80년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에 시대를 특정하지 않으려 했다”고 밝혔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지요. 젊은 사람들의 시간은 혼돈과 방황, 그리고 모색과 좌절로 점철돼 있는 것 같아요. 시대가 달라져도 청춘들이 필연적으로 겪는 성장통과 불멸의 풍경을 그리고 싶었어요.”
소설 제목은 최승자 시인의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시에서 따왔다. 소통을 하기 위해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의 상징으로 전화벨을 상정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새벽의 종소리와 전화 벨을 문장 사이 사이에서 울리는 것도 같다. 말하자면 눈으로 읽는 소설에서 귀로 듣는 소설이 그것인데 이는 작가가 활자가 만들어내는 음향에 끌리는 나이를 지나고 있는데서 연유하는 건 아닐까.
“슬픔을 딛고 사랑 가까이 가보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 읽히기를,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한쪽 손가락이 가 닿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언젠가’라는 말에 실려 있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꿈이 읽는 당신의 마음 속에 새벽빛으로 번지기를….”(‘작가의 말’ 중에서)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