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찢겨진 선체·흉물스런 모습… ‘그날의 참상’ 그대로
입력 2010-05-20 21:31
천안함은 좌우의 철골 거치대에 의지한 채 겨우 서 있었다. 선체 곳곳이 검붉게 녹슬고 칠이 벗겨져 위풍당당하기보다 초라했다. 가까이 다가선 천안함에서는 비린내가 역하게 풍겼다. 뱃머리에 여전히 새겨져 있는 ‘772’라는 숫자만이 과거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19일 함대 수리 부두에서 천안함 절단면을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 3월 26일 침몰한 지 55일 만이었다. 군은 인양한 천안함 함수와 함미를 원래 형태대로 세워놨다. 이 때문에 멀리서 얼핏 바라본 천안함은 절단면만 무시한다면 88.3m 길이의 웅장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우현 쪽에서 5m 거리를 두고 바라본 천안함은 지저분하고 울퉁불퉁했다. 녹슨 선체는 군데군데 긁혀 있었고 접시처럼 얕게 파인 자국이 많았다. 현장 안내를 맡은 합동조사단 선체구조관리 분과위원장 박정수 해군 준장은 “우현 쪽은 해저와 맞닿아 있어 크게 녹슬었다”며 “가라앉았을 때 수압으로 선체 곳곳이 울퉁불퉁해졌다”고 설명했다.
함수와 함미가 분리된 선체 중앙부 절단면의 모습은 처참했다. 11.5㎜ 두께의 외벽 철판은 마치 휴지가 구겨진 것처럼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외벽이 뜯겨져 나가서 함선 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선실 바닥이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절단면은 각종 내부 보강재들이 불규칙적으로 휘어지고 접혀 있어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절단면 안쪽에서 전선과 피복 수백 가닥이 아무렇게나 삐져나와 있었다. 이 전선들은 서로 엉키고 바닥까지 늘어져 흉물스러웠다.
천안함 좌현 하부의 선체 외벽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아래에서 위쪽으로 말려 올라간 흔적이 선명했다. 현장에 있던 합조단 관계자들은 어뢰의 수중 폭발이 좌현 쪽에서 일어난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박 준장은 “밖에서 안쪽으로 휘어진 외벽의 방향으로 볼 때 내부 폭발 가능성은 없다”며 “수중 폭발은 좌현 쪽에서 천안함과 3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일어났다”고 말했다.
합조단은 현장 공개 내내 “천안함은 좌초나 내부 폭발이 아니라 어뢰를 맞아 침몰한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실제로 함수 선저의 소나돔(Sonar Dome·음파탐지기 덮개)과 스크루에는 길게 긁히거나 크게 파손된 자국이 없었다. 박 준장은 “선저가 깨끗해 좌초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며 “좌현 쪽에서 수중 폭발이 일어난 뒤 버블이 반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쳐 들어왔다고 본다”고 밝혔다.
평택=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