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연립정부’ 출발부터 삐걱… 보수-자민당, 인권법 개정·교육 등 개혁안 입장차 뚜렷

입력 2010-05-20 21:22

새로 출범한 영국 연립정부가 개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삐걱거리는 소리도 나고 있다.

닉 클레그 영국 부총리가 “영국 역사상 1832년 이후 최대 규모의 정치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클레그 부총리는 19일 취임 이후 첫 연설에서 “정부가 국민을 조정하는 역할을 크게 줄이고, 국민이 정부를 조정하는 역할은 크게 늘리겠다”며 하원의원 임기 보장과 세습직인 상원의원의 선출직 전환, 비례대표제 도입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등의 계획을 발표했다.

이 중 내각 불신임에 필요한 하원 정족수를 재적 55%로 조정하는 방안에 노동당이 반발하고 있다. 보수당이 하원의 47%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정당들이 의석을 모두 합쳐도 내각 불신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내각 불신임 정족수는 재적 과반수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연립 정부 내에서도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자유민주당 클레그 부총리 간 이견이 드러나면서 삐걱대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연립정부가 12가지 항목의 개혁안 중 9가지 항목에서 이견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가장 큰 이슈는 인권법 개정 문제다. 현재의 인권법은 노동당 시절인 1998년 유럽 인권협약에 기초해 제정됐다. 보수당은 이 법을 영국식 권리장전으로 대체하길 원하고 있지만, 자민당은 인권법 수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11세 학생들의 일제 학력고사 실시 문제와 교사 간 임금격차를 확대하는 방안이 주요 이슈다. 자치형 공립학교 설립 등 보수당의 공약은 대부분 관철됐지만 교육부의 역할 강화를 주장해온 자민당의 공약은 사라졌다는 평가다.

이 밖에도 은행과 지방자치단체 재정, 민간 연금, 방위전략, 대학등록금 등 12개 분야에 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설치해 연립정부 정책 수립에 들어갔다. 현지 언론들은 양당간 입장 차이가 커 얼마나 많은 합의가 나올지 의문을 표시했다.

클레그 부총리의 정치 보좌관인 노먼 램 하원의원은 “보수당의 정책 공약도 참고할 준비는 돼 있지만 시민에 대한 안전망을 축소해선 안 된다”며 자민당의 정책 기조를 관철해 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수당 의원들은 보수당 선거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보수당 중견 의원인 존 레드우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자민당의 DNA에는 부유층에 세금을 부과해 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는 ‘로빈후드식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고 연정 파트너를 비난했다.

야당으로 전락한 노동당도 연정 내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노동당 국내담당 대변인 필 울라스는 “가을이 되면 결국 동그라미를 사각형 안에 넣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곧 모든 정책을 재검토하는 위원회가 필요하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