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보 위기’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입력 2010-05-20 18:02

천안함을 두 동강낸 적(敵)은 북한이었다. 천안함 피폭 지역 인근 바다 밑에서 수거한 어뢰의 프로펠러, 추진모터와 조종 장치가 북한산 CHT-02D 어뢰 설계도면과 똑같은 점, 어뢰 후부 추진체 내부에서 발견된 ‘1번’이라는 북한식 한글표기, 북한 소형 잠수함정이 천안함 사태 2∼3일 전에 서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했다가 천안함 침몰 2∼3일 후에 기지로 복귀한 점 등 민·군 합동조사단이 어제 내놓은 증거들은 의혹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합조단은 천안함 내·외부에 대한 면밀한 조사, 사체 검안, 수차례에 걸친 폭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객관성 확보에 만전을 기했다.

합조단은 이를 토대로 북한 소형 잠수함정이 천안함을 겨냥해 중어뢰를 쏘았다고 결론지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조사에 참여한 외국 전문가들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북한군의 ‘3·26 도발’은 김정일의 지시나 용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김일성의 아들답게 김정일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군사 도발로 우리 해군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북한 김정일 정권의 만행을 규탄한다. 그리고 분노한다.

북한 소행임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북한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천안함 조사결과를 날조극이라고 적반하장식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물증을 확인하기 위해 검열단을 남측에 파견하겠다는 생뚱맞은 주장도 했고, 대북 제재에 대해선 전면전쟁을 포함한 강경조치로 대답하겠다며 협박했다. 머리를 조아려 사죄해도 시원찮을 상황인데, 오히려 큰소리 치고 있으니 그 뻔뻔함이 놀라울 뿐이다. 추가 도발이라는 경거망동을 할 경우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김정일에게 경고한다.

뼈아픈 일격을 당한 군은 반성해야 한다. 북한 잠수함정이 기지를 벗어난 것을 파악하고도 ‘설마, 도발까지야’ 하다가 변을 당했다. 북한이 언제든지 도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다. 엄존하는 북한의 위협을 보지 않으려 한 것은 보지 못한 것보다 중한 잘못이다. 군은 내부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 이어 정보역량을 강화해 북한군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해야 하며, 육·해·공·해병대의 장점을 배합해 전투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천안함 ‘46용사’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정부와 군은 다양한 수단들을 적기(適期)에 동원함으로써 대북 응징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래야 더 큰 화(禍)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천안함 참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시급한 것은 대잠수함작전 능력을 높이는 등 한·미 연합전력을 보강하는 일이다. 현재 수준으로는 70여척의 잠수함을 이용한 북한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한·미 양국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한·미 군사훈련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에 차질이 빚어져선 안 된다. 북한의 도발은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인 만큼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재하는 대열에 동참하도록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한·미, 한·일, 한·호주 정상 간 통화에 이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방한과 제주에서의 한·중·일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호기가 될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북한에 대한 지원 및 경협의 중단 또는 축소, 우리 영해에서 북한 선박 통과 불허, 북한의 주적 개념 부활, 개성공단 남측 인원 소개(疎開)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때 개성공단에 있는 1000여명의 남측 인원 신변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위기 극복의 정점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이 대통령은 오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대응책을 논의하고, 내주엔 단호한 대북 조치가 담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북한을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있을 것이나, 많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대응책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합조단의 명백한 물증 제시에도 국론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는 점은 대통령의 부담이다. 대북 제재과정에서 국민들이 한마음이 될 수 있도록 이 대통령이 대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