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치우는 사람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어서야

입력 2010-05-20 18:00


“이명박 정부 들어 安保는 정책순위에서 전 정권 때보다 뒤로 밀린 느낌이다”

쉬는 날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TV 리모컨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며 “집이 왜 이리 지저분해. 청소 좀 하지…” 하면 이내 아내의 핀잔이 귓등을 세차게 때린다.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어?” 집안 살림에 한 푼이라도 보태겠다며 지난해 다시 직업전선에 뛰어든 아내로선 손 하나 까딱 않고 주전부리나 하면서 가사를 도와주기는커녕 불평이나 해대는 남편 태도에 부아가 치미는 건 당연한 일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보 의식을 걱정하는 여론이 비등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구성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를 처음 주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불과 50㎞ 바깥에 북한이 대한민국을 겨냥하고 있는데 우리는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60년 동안 우리 모두 경제발전에 치중한 사이, 늘 반복된 상황 속에서 안보의식이 해이해지지 않았나 한다.” 구구절절 옳은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가장 차별화된 분야가 바로 안보다. 이 대통령이 헌정사상 최다인 500만표 이상 차이로 여당후보를 누르고 압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의 하나였다. 보수층은 현 정부의 대북 강경 드라이브에 쾌재를 불렀고, 좌파 정권 10년간 정상궤도를 이탈한 대한민국 안보도 제자리를 잡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안보는 정책 우선순위에서 오히려 전(前) 정권 때보다 뒤로 밀린 느낌이다.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직제가 없어지고, 국가 비상사태 발생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만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폐지됐다. 경제논리에 밀려 안보 컨트롤 타워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좌파 정권에서도 안보상의 이유로 불허했던 잠실 제2롯데월드 신축을 허용했다. 제2롯데월드 신축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안보논리를 내세워 강하게 반발하던 군은 그때와 지금의 안보상황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지 이번엔 꿀 먹은 벙어리다. 북에 대해서만 강경했지, 우리 내부의 안보 시스템과 안보의식은 이렇게 느슨해지고 나태해졌다. 대통령 지적에 가장 뜨끔할 사람은 대통령 본인이지 싶다.

일각에선 군이 주적 개념을 없앤 결과가 천안함 피격으로 나타났다며 주적 개념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시기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 게 아니다. 국방백서에 명시하면 북한이 주적이고, 명시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주적이 되는가. 그에 상관없이 북한이 주적임은 불변이다. 군이 수립한 수많은 작전계획도, 해마다 실시하는 군사연습도 북한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군번이 있는 대한 남아가 아니어도 웬만한 국민이면 다 아는 상식이다. 국민의 안보의식보다 주적 개념을 부활하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이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이 더 걱정이다.

무임승차효과란 게 있다. 재화나 용역을 이용해 이익을 얻었음에도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다. 걸핏하면 터지는 병역기피가 대표적 사례다. 의무는 하지 않고 혜택만 바라는 이기심 때문에 나타나는 무임승차는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고,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천안함 피격 직후 소집된 안보관계장관회의는 한동안 “군 미필자 친목회”라는 등 온갖 야유와 조롱에 시달렸다. 명색이 보수정권에서 국가 안위를 다루는 회의 멤버 중 상당수가 군 경험이 없었던 탓이다.

어제 국방부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고원인 조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발표를 접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각오를 새롭게 다잡는 계기로 삼은 반면 “거 봐. 원정출산하길 잘했지”라며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부류들도 적지 않았을 듯하다. 제2의 천안함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대책이 앞으로도 쭉 효과를 거두려면 ‘지키는 사람 따로, 누리는 사람 따로’여서는 안 된다. 가사를 분담하지 않는 남편은 아무리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해봤자 아내에게 말발이 서지 않는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