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오종석] “누굴 믿어도 한국은 못믿어” 유감, 중국 누리꾼

입력 2010-05-20 20:02


#환구망(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인터넷사이트)=“믿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나를 공격하면 나도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손해를 보았다. 이번엔 보복한 것이다. 북한 지지한다.” “누굴 믿어도 한국을 믿으면 안 된다.”

#봉황망(홍콩 봉황TV 인터넷사이트)=“(어뢰추진체에 쓰여 있는 글이)언제는 중국어라고 했잖아, 이제는 한글로 변해?” “영어로 쓰여 있으면 미국이 한 것인가.” “미국과 한국이 군사훈련을 하고 있을 때 북한에서 감히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가.” “이명박과 오바마의 중국에 대한 음모다. 중국의 생존 공간을 억누르려 한다.”

#소후(민간 뉴스포털사이트)=“한국과 미국에서 발표한 증거는 믿을 수 없다.” “숫자 1이 있다고 북한이 한 짓이면 숫자 2가 있으면 미국이 한 짓인가.” “북한 기백 있다.”

민·군 합동조사단이 20일 ‘천안함 침몰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자마자 중국의 주요 뉴스포털사이트에 나타난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이들의 반응은 거의 일방적이다. 조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경우까지 있다. 어쩌다 “북한은 밥도 못 먹으면서 시비를 걸어 동북아 안정을 파괴한다.” “김정일이 독재 권력으로 나라를 망치고 있다.” 등등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꼬집는 글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반면 북한이 곧바로 성명을 발표해 남한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를 ‘날조극’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선 오히려 지지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국의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들의 이 같은 시각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합조단이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미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인정하고 있는데도 중국인들 상당수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인터넷 이용자 대부분이 젊은층임을 감안하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최대 교역상대국이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가 아닌가. 그런데 중국의 미래를 이끌 젊은이들이 이렇게 한국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다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우선 중국 정부가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조사결과 발표 이전까지는 혐의를 부인하는 북한을 오히려 두둔하는 입장이었다. 조사결과 발표 이후에도 한·미·일의 강력한 대응방침과 달리 소극적이다. 따라서 북한과 특수 관계인 중국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적 설득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를 공식 검토하는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의 도움 없이는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은 쉽지 않다. 미·일은 물론 중·러와의 공조·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총력외교를 펼쳐야 한다.

아울러 의혹의 원인이 되는 모든 사안 하나하나에 대해 추가 조사도 차분히 계속돼야 한다. 다수의 중국 누리꾼들은 “한국의 해군이 북한의 소형잠수함 어뢰에 침몰할 정도로 그렇게 무능하냐” “특히 한·미 간 군사훈련을 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한국 내에서도 일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런 부분에 대해선 완벽할 정도의 추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수교 60주년을 맞은 중국과 북한은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혈맹이라 불릴만큼 가깝다. 북한의 대외교역 7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고, 중국도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지정학적 이유 등으로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 한국과 미국의 우려에도 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불러들여 경제협력을 논의한 건 이를 반증한다. 중국인들이 북한을 생각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물려 있다.

이런 중국이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선 좀 더 폭 넓고 다양한 교류가 필요하다. 굳어진 중국인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면 정부 차원의 교류뿐 아니라 민간 차원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