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성혜영] 환상 속의 그대
입력 2010-05-20 17:55
영화 ‘게이샤의 추억’은 일본 이야기라고는 해도 여러 가지로 구설에 올랐었다. 실제 게이샤의 회고에 기초했다지만 원작자와 감독은 미국인이었고, 주연은 장츠이, 공리 등 중국배우였다. 촬영은 캘리포니아에 만든 세트장에서 했다던가. ‘할리우드식 동양화 화첩’이라는 누군가의 비판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영상과 음악, 특히 게이샤 ‘사유리’는 참 아름다웠다.
이야기의 배경은 2차 대전 전후의 교토라는데, 그렇다면 게이샤(藝者) 대신 ‘게이코’(藝子), 견습생이라면 ‘마이코’(舞妓)라고 불러야 맞다. 전통 예인으로서의 위상도 달라졌고 이미지도 많이 훼손되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교토의 풍경에서는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작지 않다.
며칠 전 ‘가모가와 오도리’, ‘교토의 초여름 풍물시(詩)’라고도 불리는 게이코의 춤 공연을 보러 폰토초 가무공연장을 찾았다. 폰토초는 교토를 남북으로 흐르는 강 가모가와(鴨川)와 에도시대의 운하 다카세가와 사이에 있는 좁고 긴 골목이다. 현재까지도 게이코들이 활동하는 역사가 오랜 유흥 지구 중 하나라, 꽉 찬 객석을 둘러보니 반쯤은 관광객인 듯했다.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몰라도 그만이었다. 신록의 버드나무 밑이거나 어느 기차역이기도 했고, 떠들썩한 축제의 현장이거나 한적한 오후의 찻집이기도 했다. 긴 두루마리 그림이 펼쳐지듯, 초여름의 사랑과 이별이 손끝 발끝으로 사뿐사뿐 실려 왔다 이내 사라진다. 샤미센과 피리, 북 등이 장단을 맞추었다. 때로 폭풍처럼 때로 훈풍처럼.
가부키나 노 공연과는 반대로 춤과 반주 모두 여인들의 무대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젊은 게이코들만이 아니었다. 기모노와 머리 모양, 화려한 장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젊은 쪽이었지만, 짙은 분장 밑으로도 겸손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나이 든 쪽이었다. 아슬아슬 건너온 세월의 떨림이 손끝에 파르르 남아있는 늙은 게이코도 있었다.
고요한 동작과 시종여일한 표정 속에 감춰진, 제각각의 소망과 열정을 상상해 본다. 모두 이렇게 지나가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었던 불꽃같은 염원일까? 이제는 잊어도 좋으련만, 그리움으로 쌓여만 가는 한 때 빛났던 시절에 대한 회한일까?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언젠가 잡고야 말겠다고 날마다 다짐하는 어떤 사랑일까?
모든 생존자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지. 그러나 영화 한 편으로, 한 시간 남짓의 춤으로 그 곡진한 세월을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우리가 보고 싶었던 것은 어쩌지 못하는 강퍅한 현실이 아니라, 젊으나 늙으나 가슴에 품고 있는 제각각의 환상 속의 그대였을 게다.
환상이라도 좋았다. 공연장을 나서며 소설 속 독백이었는지 영화의 카피문구였는지를 나도 모르게 되뇌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애달프고 아름답구나! 폰토초의 주막들이 하나 둘 붉은 등을 밝히기 시작한 어스름 저녁….
성혜영 박물관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