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청파교회 김기석 목사] “자유로운 상상력 펼 수 있는 책 선호”
입력 2010-05-20 20:44
청파교회 김기석(53) 목사는 하루에 3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 보통 한 달에 10여권씩 독서한다. 목회를 하면서 따로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주로 새벽 기도회를 끝내고 책을 보지만 김 목사가 가장 선호하는 독서시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다. 그에게는 자가용이 없다. 김 목사는 90년 정의평화창조질서보존대회에 참석한 뒤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먼저 자신이 생태보전을 실천하기로 했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자가용을 갖지 않기로 했다. 아직 버티고 있다. 심방을 갈 때면 언제나 책을 편다.
김 목사가 선호하는 책은 먼저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것들이다. 문학작품과 시, 수필 등이다. 이런 책들을 읽은 다음에는 자신을 지성적·의지적으로 괴롭히는 책을 본다. 어려운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지성의 한계를 실감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뭐 그리 어려운 인문학 공부를 하느냐”고 묻는다. 그는 “성서를 바로 보기 위해서라도 인문학 공부는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신자들은 성서라는 텍스트와 이 시대의 상황이라는 콘텍스트를 바로 읽어내야 합니다. 이 땅에는 목회자들이 미처 분석할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 흐름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자입니다. 그분들이 만들어내는 저작들을 철저히 소화해야 세상을 바르게 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보는 책 가운데 소위 ‘나쁜 책’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나쁜 책은 자기의 신앙적 전제들을 재확인하는데 그치는 책들이다. 자신의 구미에 맞는, 편하게 접근할 책만 보는 것은 좋은 독서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신자들은 기독교 관련 서적뿐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지적·영적으로 ‘괴롭힐’ 깊은 내용의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김 목사는 강조한다.
그렇다면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 김 목사에 따르면 좋은 책은 ‘인간 경험의 깊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사람들의 것을 담아놓은 책’이다. 니체가 말한 ‘피로써 쓴 책’이다. 좋은 책은 사물과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명확하다. 독자들의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 풍요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그리고 이런 관점을 소통 가능한 언어로 담아낸 책이다. 소통의 언어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적절한 기술체 속에 담기지 않으면 외면 받게 된다.
김 목사는 “우리(신자)가 사용하는 신앙적 언어가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가를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면서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언어와 수사는 화려하지만 그것들이 세속에서는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가 목회자로서 속상해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목사가 쓴 책은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김 목사는 보편성의 부재로 보았다.
“문제는 종교적 언어를 쓰는지 여부가 아닙니다. 종교적 언어를 쓰더라도 그것이 사람들의 보편적 삶에 감동을 일으킨다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요. 그러나 목사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감동을 줄 언어를 갖고 있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참 속상한 일입니다.”
청파교회에서는 매주 토요일 김 목사가 주재하는 독서모임을 갖는다. 한 주나 두 주 이내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깊이 있는 신앙 서적은 물론 인문학 서적들도 주로 읽는다. 독서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같은 책 읽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짐은 물론 성경의 세계와 훨씬 가까워진다고 토로한다.
“분별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세상의 것들을 살펴봄으로써 성경적 가치가 정말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김 목사는 한국 기독교의 문화가 성찰적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찰이 무엇인가. 내가 타자와 만나게 될 때 나의 생각이 타자에게 반영되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이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성찰성이 부족한 것”이라면서 “교회 내에 성찰의 문화가 확산될 때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아도 신자들이 독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파교회 내 김 목사의 서재에 들어서면 ‘회사후소(繪事後素)’란 글귀가 적힌 액자가 눈에 띈다. 논어에 나온 것으로 그림은 먼저 바탕을 손질한 뒤 채색한다는 뜻이다. 김 목사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먼저 바탕이 되는 마음이 바르고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그런 다음 어떤 일을 도모해도 된다. 그러나 바탕이 바르지 않을 때에는 어떤 일을 이루더라도 사상누각일 뿐이다. 신자에게 바탕이 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뜻이다. 김 목사는 생명은 하나님의 뜻에 귀 기울이며 그 뜻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인터넷 서점보다는 일반 서점에 가서 책을 산다. 직접 눈으로 보고 책을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책 구입 비용으로 한 달에 20만원 정도 지출한다. 석 달에 한 번씩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들어가 외국에서 나온 책을 구입한다.
그가 추천하는 책 리스트는 다른 목회자들과는 달랐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장바니에 등의 책을 추천했다(추천 책은 리스트 참조). 김 목사의 독서 습관 가운데 하나는 일단 마음에 와 닿은 작가의 책은 모두 보는 것이다. 최근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카잔차키스에게 푹 빠졌다. 김 목사는 일상의 삶 속에서 갇혀 살다시피 하는 목회자로서는 카잔차키스가 추구했던 자유가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개월여 동안 그는 카잔차키스의 기행 전집을 모두 읽었다.
김 목사는 구도자형 목회자다. 말이 깊었고 얼굴도 투명했다. 목회자는 영원한 빛을 향해 걷는 수도자다. 끊임없이 자기 실체를 찾아가는 순례자다. 그는 말한다. “목사는 그 영원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에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성도들이 빛을 향해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