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떤 방법으로 세계를 지배해왔나… ‘전방위 지배’
입력 2010-05-20 17:27
전방위 지배/윌리엄 엥달/에버리치홀딩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40여년을 끌어온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중국이 빠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이후부터 따지면 미국이 패권을 누린 기간은 60여년에 이른다.
미 달러가 국제결재수단인 기축통화가 된 것과 막강한 군사력은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할수 있는 밑바탕이었다. 미국의 국방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2008년 기준 미국 국방 예산은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 가량(48%)에 해당된다. 경쟁국인 중국과 러시아 및 이란에 비해서는 각각 6, 10, 100배가 더 많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 그리고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태평양 연안 동맹국의 국방 예산을 모두 합치면 1조100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의 72%를 차지한다. 이 같은 막강한 군사력은 미국 패권의 원천인 셈이다. 막강한 군 당국의 배후에는 글로벌 방위산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1961년 고별 연설 중 경고했던 군산복합체는 워싱턴 정가의 싱크탱크와 정당에 자금을 대줌으로써 지속적인 군사력 확장을 유지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해 가고 있다.
독일계 미국인 경제학자이자 지정학자인 윌리엄 엥달은 미 국방부가 1960년대 냉전 시절부터 현재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은밀히 실행해 온 ‘전방위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 프로젝트를 파헤친다. 전방위 지배는 육·해·공을 비롯해 우주와 사이버 공간 등 전 영역에서 지구를 지배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은 이런 전략 하에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자유시장과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실상은 군사력 등을 기반으로 다른 나라를 영향권 안에 편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해외 공작의 핵심 기구인 CIA는 수십년 간 ‘전방위 지배’를 이유로 이란, 과테말라, 브라질, 베트남, 가나, 콩고 등에서 소규모 쿠데타를 비호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미국은 정치적 선전으로 우익·주류 매체를 장악하고, 체코 폴란드와 헝가리 등 전 바르샤바 조약 가입국들을 꾀어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시켰다. 또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색깔 혁명과 로비로 친미 정권이 들어서게 하는 등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해 왔다. 아프리카에서는 원자재 전쟁을 벌이려고 고릴라 보호 단체 같은 NGO를 이용해 게릴라 부대에게 무기를 밀반입하기도 했다.
좌파 학자들은 ‘미국이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책임진다’는 인상을 남긴 것 자체가 전방위 지배라는 사기극이 먹혀들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입을 모은다. ‘신(新)냉전’의 주체들은 은밀히 전방위 지배 전략을 추진했지만 9·11 사태 이후에는 미국의 적을 모조리 섬멸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해외에서는 나토 회원국에 미사일·군사 기지를 설치해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견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비폭력 전술’인 인권을 내세워 견제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은 인도를 끌어들여 중국을 비판했고, 폭동이 일어난 티베트를 공개적으로 응원했다. 또 각국 정상들의 올림픽 불참 의사 피력을 유도해 중국의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끼쳤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 정부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 금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공약을 내걸고 2008년 11월 당선됐지만 기본틀에는 변화가 없다. 오바마는 취임하자마자 전 CIA 국장이자 부시 일가의 측근인 로버트 게이츠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아프가니스탄에 3만 병력을 추가 파병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에 비해 잊혀진 전쟁터였다. 하지만 미국은 2001년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핑계로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주둔시킴으로써 유라시아 중심부에 정치·군사적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방위산업, 군하청업체, 민영 석유회사 등으로 이뤄진 군산복합체의 이해가 반영된 ‘전방위 지배’란 의제에서 미국이 벗어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 같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