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에게서 5000원 빼앗고 자전거 훔친 소년… 중·고등학생이 배심원 ‘눈높이 재판’

입력 2010-05-19 18:31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가정법원의 한 법정에선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판사석을 비워둔 채 중·고등학생들이 재판에서 배심원 역할을 맡아 토론을 벌인 것. 이들은 학교장 추천을 받아 ‘청소년 참여법정’의 참여인단으로 뽑힌 학생 9명이었다.

재판 쟁점은 초등학생으로부터 5000원을 빼앗고 자전거 3대를 훔친 혐의(특수절도, 공갈 등)로 법정에 선 김모(16)군에게 어떤 과제를 부과할 것인가였다. 한 학생이 “이행과제는 조금만 부과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다른 학생이 “잘못된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맞받았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김군이 평소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배심원들은 김군에게 금연클리닉 참여를 결정했다. 일기쓰기와 청소년 참여인단 활동 등의 과제도 더해졌다. 학생들의 논의가 끝나자 소년3단독 신한미 판사가 법정에 들어와 김군에게 이행명령을 내렸다.

재판은 가정법원이 다음달 청소년 참여법정의 시행을 앞두고 연 모의재판이었다. 청소년 참여법정이란 경미한 비행을 저지른 소년범 사건을 비슷한 연령대의 학생들로 구성된 참여인단이 심리한 뒤 부과 과제를 선정해 판사에게 건의하는 제도다. 청소년 비행 사건에 또래의 시각을 반영하고 법적 처분을 부과하는 대신 과제를 이행하게 해 책임감과 준법 의식을 키우자는 취지다.

판사는 참여인단이 결정한 과제를 소년범에게 이행하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소년범이 이를 성실히 이행하면 별다른 처벌 없이 사건이 끝나게 된다. 재판은 소년범이 청소년 참여법정에 동의할 경우에만 열린다.

청소년 참여인단은 학교장 추천을 받은 중·고생 또는 참여인단에게 재판을 받고 이행과제를 성실히 이행한 학생 등 5∼9명으로 구성된다.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이행과제는 인터넷 중독 예방교육 받기, 금연클리닉 참여하기, 안전운전 강의 듣기 등이다. 일기쓰기와 청소년 참여인단 활동은 필수사항이다. 서울가정법원 김윤정 공보판사는 “비밀 유지를 위해 사건 당사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참여인단에서 배제할 예정”이라며 “청소년 참여법정은 학생의 자존감 회복을 돕는 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