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올레kt배 ● 송태곤 9단 ○ 박영롱 아마 7단
입력 2010-05-19 17:21
여행을 다녀왔다. 봄 여행이라고 하기엔 조금 뜨겁고 여름휴가라고 하기엔 조금은 따사로운 여행이었다. 오르기 쉽게 정리해놓은 길을 따라 정자에 오르니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밤새도록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고 떠오르는 해를 보며 잠을 깼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며칠 동안 질리도록 바다를 봤는데도 질리지도 않아 최대한 늦장을 부리며 올라왔다. 아직 두발로 밟아보지 못한 미지의 땅이 많다는 것은 남은 삶을 살아가기에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한참 게으름을 부리다 올라오니 수많은 일들이 온몸을 내리 누른다. 하지만 또 떠나기 위해선 해야 할 일들을 잘 해나가야겠지. 아자!
오늘 소개할 깜짝 한 수는 현재 아마의 신분으로 올레kt배 본선 2회전까지 올라 주목을 받고 있는 박영롱 아마7단과 입단하자마자 폭풍처럼 기계를 휘어잡았던(이 때문인지 기풍 때문인지 어떤 연유에선지 별명이 송 폭풍이다) 송태곤 9단의 대국에서 나온 수다. 끝내기 승부에서 두어진 실전도의 백1! 누구라도 당연히 죽어있다고 생각한, 사석을 이용한 멋들어진 맥 점이다.
참고도 흑1로 덥석 한 점을 먹으면 백2로 단수치고 흑3으로 따먹을 때 백4로 뚫려 우변 흑 집이 파괴되어 바로 승부가 뒤바뀌고 만다. 어쩔 수 없이 흑은 2로 이어 중앙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에 백은 7까지 중앙을 파호하며 큰 득을 봤다. 백1은 전혀 아무 일 없을 것만 같이 철벽으로 보이던 집에서 찾아낸 보석 같은 수였다.
이 후 당황한 흑은 좌하귀에서 치열하게 패싸움을 벌여 승부는 흑에게 돌아갔지만 흑이 승리하기까지에는 엄청난 마음고생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끝나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바둑 두는 내내 송9단의 신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혼잣말 혹은 자책 같은 것인데 분명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기에 간혹 뭐라 하시는 팬들이 많지만 사실 대국자의 입장에서 보면 긴박한 상황에서의 그 심리상태가 무의식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고 싶다. 박7단의 실물은 아직 보지 못해 그 느낌을 모르겠지만 한 판 한 판씩 상위 랭커들을 이겨나가는 것을 보니 이번 판은 아쉽게 졌지만 이미 대단한 실력자임이 분명하다.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