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살리자-③ 대화 넘치는 김세헌씨 가족] “입 대신 귀 열었더니… 행복한 수다 가족 됐어요”

입력 2010-05-18 18:08


하하 호호…. 김세헌(51·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씨 집에선 소곤소곤 대화가 끊이지 않고 사이사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곤 한다.

맏딸 윤아(23·고려대 생명공학과3)씨는 가족들에게 남자친구 얘기까지 숨김없이 털어놓고, 아버지에게 남자들의 성(性)에 대해 물어볼 정도다. 윤아씨는 “가족은 친구들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어떤 얘기를 해도 잘 통하고, 고민이 있을 때는 제대로 된 조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얘기한다”고 했다. 둘째딸 윤정(19·이화여대 기독교학과1)씨도 “저도 그래서 중요한 것은 가족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의논한다”고 말했다. 막내 윤재(13·봉은초6)군은 “누나들이 뭐든 얘기하기 때문에 예비 자형 성격까지 알고 있다”며 큭큭거렸다.

윤재네도 처음부터 속내까지 모두 털어놓을 만큼 대화가 넘치는 가정은 아니었다. 김 교수의 아내 임은경(47·연세대 교회음악과 강사)씨는 2004년 남편이 교환교수로 미국에 갔을 때 윤정이가 좋지 않은 소문에 휘말려 마음고생을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중1이던 윤정이가 교회에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어요.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 아이가 상처를 입게 됐지요. 이성 문제는 부모와 얘기하기 어렵잖아요.”

김 교수 부부는 매일 저녁 가족예배를 본 뒤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얘기를 하도록 했다. 이때 김 교수 부부가 한 일은 입은 다물고 귀는 열어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얘기하면 훈계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해지지만 참아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는 뻔히 보이는 길을 에둘러 가는 자녀가 안타까워 ‘이게 옳다’ ‘저렇게 해라’ 조언을 하게 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자녀들은 입을 닫게 마련이다. 말해봤자 참견만 받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임씨는 “계기는 윤정이의 병아리 연애사건이었지만 멍석을 깔아준 것은 ‘아버지학교’였다”고 말했다. 화가 나면 참지 못하는 ‘버럭’ 남편이었고 화가 나면 풀릴 때까지 말도 않는 ‘앙금’ 아내였던 이들은 김 교수가 ‘두란노아버지학교’를 다닌 뒤 바뀌었다. 김 교수는 남편에게조차 거리를 두려는 아내를 이해 못해 다투곤 했는데 그 이유를 알고는 받아들이게 됐다. “아버지가 개척교회 목사였던 아내는 어린 시절 자기 것이 따로 없었대요. 그래서 자기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었던 거지요.” 또 언짢은 일이 생기면 버럭 화를 내는 대신 “나 화가 나려고 하는데…”라고 나 전달법으로 감정을 전했다. 임씨가 토라질라치면 김 교수는 “날 사랑한다는 거지”하면서 다가서고, 김 교수가 경고 메시지를 보내면 임씨가 한 발짝 물러서면서 이들은 잉꼬부부가 됐다.

임씨는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신경 쓰기 어렵고, 부부싸움을 하면 아이들은 불안해한다”면서 “부부가 서로 사랑해야 자녀와 대화 나눌 여유도 생기고 가정도 화목해진다”고 말했다.

자녀들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특히 ‘하숙생이 된 것 같다’고 속상해하는 아버지들은 더하다. 하지만 마음만 태산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두란노아버지학교 국제운동본부 김성묵 본부장은 “휴대전화에 ‘오늘 예뻐보이더라’ ‘사랑한다’ 등 마음을 담은 문자를 보내거나 쪽지를 써서 말꼬를 트라”고 조언했다. 자녀가 좋아하는 운동선수나 연예인 등 관심사를 알아뒀다가 자녀의 마음 문이 열리는 것 같으면 그것을 소재로 대화를 시도하라고 일러준다. 김 본부장은 “대화를 나누는 화목한 가정이 되려면 어머니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평소 어머니가 ‘요즘 아버지가 힘들다고 하신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등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긍정적으로 말해주라”고 당부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