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곳곳 모여 뜨거운 ‘영성의 축제’… 독일 교회의 날 뮌헨 현장을 가다

입력 2010-05-18 23:16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창 9:11)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독일 보쿰대학의 구약학 권위자 위르겐 에바흐 교수의 강연을 1000명이 넘는 청중이 듣고 있었다. 준비한 원고를 줄줄 읽는 딱딱한 강연이지만 지루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독일 뮌헨에서는 2회 ‘에큐메니컬 교회의날(Kirchentag)’이 ‘그러므로 희망을 가져도 좋습니다(So that you may have hope)’라는 주제 아래 진행됐다. 기도회, 예배, 성경공부, 강연, 토론회, 콘서트 등 3000여개의 행사에 독일 전역과 유럽 등에서 온 25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했다.

행사 기간 내내 날이 궂었지만 참가자들의 열기는 막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실내 행사가 진행된 뮌헨 동쪽 메세슈타트(시립박람회장)는 아침마다 그 방향 전철이 콩나물시루가 됐다. 꽉 찬 전철 칸에서는 누군가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전체 승객이 호응했다. 영문을 모르는 관광객은 깜짝 놀랐지만 이 기간 뮌헨에서는 일상적 풍경이었다. 고풍스런 시청과 교회 건물로 둘러싸인 마리엔 광장, 뮌헨올림픽 기념공원, 테레지엔 광장 등은 모두 이번 행사의 상징인 오렌지색 스카프를 맨 사람들로 북적였다.

독일 교회의날은 격년으로 한 해는 가톨릭, 한 해는 기독교가 연다. 기독교 행사는 지난해로 32회, 천주교 행사는 내년으로 98회째다. 2003년에는 베를린에서 사상 처음 양측이 연합해 행사를 열었는데 평년 참가자의 두 배인 20만명이 참석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연합 성찬식 문제를 놓고 갈등도 빚어졌지만 올해 또다시 연합행사가 열려 ‘교회연합’에 대한 독일 교인들의 의지를 보여줬다.

놀라운 것은 참가자들의 진지함이었다. 기도회, 예배, 신학강연, 정치적 이슈 토론회 등 다소 무거운 행사가 절반이 넘는데도 어디나 수백, 수천명이 꽉꽉 들어찼다. 독일 아켄에서 온 교포 신문금(60)씨는 “독일 교인들은 비록 주일성수 등 개인 신앙생활에는 엄격하지 않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은 확실하고, 특히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한다”고 전했다.

청소년 참가자들이 많은 점도 놀라웠다. 독일 학교들이 출석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수만명의 청소년이 배낭과 침낭을 메고 와 학교 교실과 강당 등에서 합숙하며 행사를 즐겼다. 독일 서부 문스터에서 친구들과 9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온 사라 핀케(17)양은 스스로를 “분명한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며 “뮌헨이 매력적인 도시이고 즐길 행사가 많아 왔다”고 말했다.

개최 도시가 수년간 철저히 준비하는 점도 행사가 오랜 세월 이어져 오는 비결이다. 첫날 부스를 열고 한국 문화를 알린 뮌헨 한인교회 남진열 목사는 “조직위원회가 2년 이상 참가 단체들과 꾸준히 의견을 조율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행사는 뮌헨 전체의 축제가 됐다. 호젓한 강가의 120년 된 교회에서는 관악 밴드가 성가곡을 연주했고,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지하 소극장에서는 레게와 록, 댄스 등 장르의 바이블송 공연이 열렸다. 그밖에도 침묵예배, 24시간 기도회, 연극 등 볼거리는 수도 없었다. 고흐의 ‘해바라기’가 걸린 피나코텍을 비롯해 박물관과 미술관은 행사 등록증이 있으면 모두 무료였다.

오스트리아 기독청년 단체 간사 콘스탄체 에르카(56)씨는 “유럽 다른 나라는 이런 기독교 행사를 열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그러나 유럽에 여전히 기독교인들이 있으며 이곳에서처럼 열정을 가진 교인도 있다는 것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뮌헨=글·사진 황세원 기자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