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김씨조선

입력 2010-05-18 17:48

한반도 역사에는 ‘조선’을 국호로 한 왕조가 여럿 있다. 단군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이 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단군조선 위만조선을 고조선, 이성계가 세운 조선은 아무 수식 없이 조선이라고 한다. 조선 왕족의 성(姓)을 따 ‘이씨조선’ 또는 ‘이조’라고 하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일제가 조선을 격하시키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해서 잘 쓰지는 않는다.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는 ‘조선’과 ‘화령(和寧)’ 중 어떤 것을 새 나라 이름으로 사용하면 좋을지 명나라에 재가를 청한다. 조선은 단군조선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화령은 이성계 출생지여서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나라 이름조차 뜻대로 지을 수 없었던 역사여서 자존심 상하지만 어쨌든 명 황제의 선택으로 조선이 새 왕조의 국호가 됐다.

한·일 강제병합으로 사라진 조선은 광복 후 북한에서 다시 살아난다. 남한에서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20여일 후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이 들어선다. 김일성 일파도 정통성 확보 차원에서 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으로 ‘조선’이라고 한 듯하다.

그런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공식 명칭은 북한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조선의 봉건통치를 청산 대상으로 삼으면서 조선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60년 이상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민주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후안무치하다.

공화국 역시 마찬가지다. 공화정은 왕정에 대비되는 정치체제다. 공화정과 왕정의 가장 큰 차이는 세습으로 승계되는 왕의 유무다.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스페인 등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유럽 선진 민주국가들의 공식 국호는 모두 ‘○○왕국’이다.

북한이 어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를 6월 7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소집 이후 두 달 만에 최고인민회의를 다시 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국방위원회 등의 인사문제가 안건으로 올라 후계 구도와 관련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일성·정일 부자 세습으로 이어진 권력을 김정일의 삼남 김정은으로 승계하려는 징후가 북한 전역에서 감지되고 있다. 3대 권력세습은 왕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러고도 ‘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게 낯 뜨겁다. ‘김씨조선’. 이전의 조선과 구분하는 데 딱 맞는 이름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