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너의 假面, 나의 페르소나

입력 2010-05-18 17:42


토요일 오후, 날씨가 화창하다. 이화여대 정문은 사람들로 북적하다. 볕은 뜨겁지만 바람이 산들산들한 게 봄 위에 여름이 온 게 확실했다. 정문 앞 한적한 공간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전화를 걸고 있는 동안, 무심결에 한 여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은 나의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가면 때문이었다. 다소 시원하게 차려입은 그녀는 정확하게 얼굴 크기만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은 유명 인사나 특별한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의 얼굴로 보였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한동안 관찰하듯 지켜보는 실례를 범하면서도 가면의 정체를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가면의 정체는 그녀의 얼굴 사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를 유심히 보는 건 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통행이 많은 위치에 있었음에도 그녀에게, 그녀의 가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 스쳐갈 뿐이었다.

그녀는 왜 가면을 써야 했을까. 얼굴의 특정 부분을 숨겨야만 해서? 아니면 감정과 표정을 숨기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면 오늘 보여주고 싶은 얼굴은 가면의 그 얼굴일까? 그녀에게는 몇 개의 얼굴 가면이 더 있으며 가면마다 특정한 용도가 있을까 등등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가면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상상하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가면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늘 세상을 향해 보여주고 싶은 그녀의 감정과 특별한 상황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스크(mask)가 얼굴에 쓰는 물리적 형태의 가면을 뜻하는 반면 페르소나(persona)는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을 나타내는 심리적 가면이다.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페르소나는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데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이 만든 이론에 쓰이게 되었다. 그는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루어 간다고 한다.

페르소나를 통해 개인은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할 수 있고 자기 주변 세계와 상호관계를 성립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페르소나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심리구조와 사회적 요구 간의 타협점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게 해 주는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녀가 물리적 가면(마스크)을 썼다면, 그녀를 보고 있던 나는 분명 나의 심리적 가면(페르소나) 중 하나를 쓰고 있었다. 그녀의 가면을 보는 동안 나는 프로젝트 파트너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적절한 연락은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에 필요한 페르소나를 꺼내어 사용해야 했다.

오늘도 그녀는 가면을 쓰고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가면을 쓰고 있을까. 궁금증은 일요일이 다하도록 내곁을 떠나지 않았다.

김연숙 출판도시문화재단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