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 빼고 수염 기르고… 내 상태 아주 거칠게 두면서 삼류깡패 루저 정서에 젖어들려 노력했지요”
입력 2010-05-18 17:44
배우 박중훈(44)은 건재했다. 지난해 ‘해운대’가 1139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으며 쓰나미를 몰고 다닐 때 그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박중훈 답지 않은 무기력한 캐릭터 때문에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고 심지어 그의 연기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박중훈이 1년 만에 신인감독이 연출한 ‘내 깡패같은 애인’으로 돌아오자 이제는 그가 내리막 길을 탄다는 수군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세종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박중훈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쾌활했다. 초면인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넨 그는 곤란한 질문에도 서슴지 않고 대답하는 ‘쿨한’ 배우였다.
‘해운대’에서 연기력 논란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홈런타자가 삼진을 당했다고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면서 “한 타석에서 삼진 당했다고 야구선수로서 자질이 없다고 하는 건 비약”이라고 비유를 들어 답했다. “25년 동안 40편(40번째 작품은 촬영 중인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 올리기’)을 하면서 에너지 있는 역할을 많이 했고 그게 쌓인 거 같아요. 대중이 박중훈에게 무기력한 캐릭터는 안 어울린다고 본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관객이 저한테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사랑이 느껴졌어요.”
그는 “배우는 무작정 원하는 배역을 기다릴 수 없다”며 “배우는 제작자나 감독이 선택하면 그걸 다시 선택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우는 배역을 고르는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번에 출연한 ‘내 깡패같은 애인’에 대해서는 “모든 영화의 지향점은 재미와 의미인데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의미가 충분히 있었고 재미도 충족했다. 쉽게 말해 작품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한 동철은 싸움실력도 변변치 않은 삼류건달이다. 보스를 대신해 감옥에 갔다 오면 에이스로 키워주겠단 약속을 믿었지만 배신당한 인물이다. “영화는 클로우즈업이 되면 실물보다 6000배 정도 확대돼요. 관객은 어두운 곳에서 지켜보죠. 그렇기 때문에 연기하는 배우의 내면을 들킬 수밖에 없어요. 연기법도 중요하지만 진짜 감성이 있는지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배역에 더 젖어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박중훈은 “동철은 루저인데 현실의 박중훈은 상당히 윤택하다. 좋은 아파트에 좋은 차가 있고 와인을 마신다”면서 “나의 기름기를 빼기 위해 훈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굳이 살을 뺄 필요는 없었는데 트레이너와 운동을 더 열심히 하고 수염도 기르고 내 상태를 아주 거칠게 두면서 그 정서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배우 박중훈은 소통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는 트위터를 열심히 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다. 그를 팔로우 하는 사람만 3만5000명이 넘는다. 박중훈은 “트위터는 저한테 엄청난 휴식이다. 장난을 칠 때도, 일상을 전할 때도, 진지한 얘기를 할 때도 있다”면서 “제 마음 속 얘기가 그대로 나가니 직접 소통할 수 있고 피드백도 필터링이 되지 않은 생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띄고 있다고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그런 걸 나누는 건 허망한 일인 거 같다. 굳이 나누자면 리버럴리스트”라면서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사회의 갈등이 생기는 것 같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