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26조원 투자 발표… ‘반도체 절대강자’ 굳히기 나섰다
입력 2010-05-17 21:39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공격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위기가 기회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이 회장은 그동안 ‘선점 전략’을 수차례 언급하며 ‘과감한 투자’를 강조했다. 투자 규모가 사상 최대인 26조원으로 결정된 것에도 이런 판단이 깔려 있다.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기 위한 대규모 물량공세다. 17일 확정된 삼성전자 투자계획은 반도체 11조원, LCD 5조원, 완제품 2조원 등 시설에 18조원을 투자하고 연구개발(R&D)에 8조원을 들인다는 내용이다. 이번 계획은 경기도 화성 반도체 사업장의 신규 16라인 기공식에서 확정됐다.
투자규모도 반도체 부문이 가장 크다. ‘반도체 신화’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삼성전자가 다시 대대적인 반도체 투자에 나선 것이다. 수요가 확장되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서 한발 앞선 투자로 경쟁업체와의 차이를 더 벌려 나가겠다는 의지다. 또 이 회장이 2004년 12월 이후 처음 화성공장을 찾은 것도 반도체 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성장, 2000년 이후 최대 호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설투자를 당초 계획했던 5조5000억원에서 9조원으로 늘렸다.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LSI)에도 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번에 짓는 16라인은 내년부터 본격 가동돼 차세대 메모리 제품을 월 20만장 이상(12인치 웨이퍼 기준) 생산하게 된다. 메모리 분야에서의 선도적 리더십을 확고히 하기 위한 라인 건설이다. 이와 함께 올해 15라인 증설을 통해 30나노급 D램 생산비중도 10% 이상 늘릴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LCD 투자액도 당초 3조원에서 5조원으로 늘려 잡았다. 2조5000억원을 추가로 들여 충남 탕정사업장에 8세대 LCD 생산라인을 새로 짓기로 한 것. 삼성 측은 “내년 이후 대형 LCD TV용 패널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한 라인 건설”이라며 “이로써 8세대 라인이 4개로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공격적인 LCD 투자도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업계 호황을 최대한 활용, 후발업체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기 위한 조치다. 2005년 업계 최초로 월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했던 삼성전자 LCD사업부는 지난 3월에 또다시 업계 최초로 월 매출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핵심 부품인 반도체와 LCD 외 TV, 휴대전화, 가전 등 완제품 부문 시설투자에도 2조원을 책정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합작사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도 이날 탕정사업장에 2012년까지 2조500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생산라인을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까운 미래에 급격히 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는 AMOLED TV용 패널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 11일 그룹 차원의 신사업 투자계획(23조3000억원) 발표에 이은 이번 주력사업 투자 확대 결정의 중심에는 이 회장이 있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까딱 잘못하면 구멍가게가 될 수 있다”는 위기론을 설파하며 지난 3월 24일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은 “이런 시기에,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며 대규모 투자 결정을 이끌었다. 오너 경영인만이 내릴 수 있는 과감한 투자 결정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또 이번 투자 발표에 무려 1만명에 달하는 신규 고용계획이 포함된 것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삼성 측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온 이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