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박강섭] 지역축제 방문객 뻥튀기기
입력 2010-05-17 17:51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선의의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지적했다. 통계는 사람들을 ‘숫자의 마법’에 빠져들게 하는 거짓말 도구라는 것이다. 조엘 베스트도 저서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 서문에서 “통계는 신용을 잃었다”고 선언했다.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 통계 수치를 과장하거나 축소한다는 말이다.
‘통계라는 이름의 거짓말’ 중에서 가장 대표적 사례가 집회 참여자를 추산하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주최자는 집회 참가자를 부풀리는 경향이 있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은 가능한 축소하려는 성향이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때도 시위가 절정에 달했던 6월 10일의 참가자 수를 놓고 주최 측은 70만명, 경찰은 8만∼10만명으로 맞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촛불집회 참가자 수를 두고 이처럼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은 참가자 계산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경찰은 3.3㎡(1평)당 8명이 모인다는 가정 아래 시위대 점유 면적을 곱해 인원을 산정하고, 집회 주최 측은 이보다 많은 15∼20명으로 추정해 집계한다. 이해관계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입맛에 맞게 통계 수치를 늘리거나 줄여온 관행 탓이다.
몇 해 전 탐조여행 취재 중 가창오리의 수를 놓고 안내 공무원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그는 지역에서 월동하는 가창오리가 50만 마리라고 주장했다. 학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 가창오리 50만 마리 중 한국에서 월동하는 가창오리를 약 30만∼40만 마리로 추정한다. 그것도 날아오자마자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기 때문에 한 지역에 월동하는 가창오리는 많아도 20만 마리를 넘기 어렵다. 끝까지 50만 마리라고 우기던 그는 “일일이 헤아려 보았느냐”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입을 닫았다.
통계라는 과학적 조사 수단을 악용해 가창오리 수 부풀리듯 축제 방문객을 과대포장하는 일이 여전하다. 굵직굵직한 봄축제들이 어린이날을 전후한 이달 초에 대부분 막을 내렸다. 축제가 끝나자 지자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50만명에서 100만명 이상이 축제장을 찾았다는 과장된 보도자료를 뿌렸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수십억원이라는 ‘새빨간 거짓말’도 덧붙였다.
인구 10만명도 안 되는 지자체에 4∼5일 축제기간 중 100만명이 몰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승용차에 4명씩 탄다고 가정하면 하루 5만대가 찾아야 한다. 승용차를 일렬로 세우면 경부고속도로 서울∼구미 구간을 꽉 채우는 엄청난 수치다. 빈틈없이 주차할 경우 15만평의 주차장도 필요하다. 서울 상암월드컵 주경기장 55개의 넓이다.
지자체들이 축제 방문객을 부풀리는 이유는 단체장의 치적을 홍보함으로써 표로 연결시키고 실적을 과대포장해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서다. 여기에 지난해 축제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고 보고를 해야 담당공무원이 제대로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매년 숫자를 부풀리다 보니 5∼10배나 뻥튀기가 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지자체로부터 축제평가 용역을 맡은 교수들도 방문객 부풀리기에 한몫했다. 암행 평가를 해야 할 교수가 지자체의 환대를 받고 지자체의 요구대로 숫자를 부풀려 주는 일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한민국 최우수 축제 중의 하나인 전남 함평나비축제가 지난 9일 막을 내렸다. 놀랍게도 함평군은 17일 동안 30만명이 방문했다고 구체적 수치를 공개했다. 관례대로 150만명이 축제장을 찾았다고 부풀려도 믿어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축제다. 겨우 4만명이 몰린 어린이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4∼5일 축제에 100만명이 몰렸다는 ‘새빨간 거짓말’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17일 동안 30만명 방문’이라는 함평군의 솔직한 통계에 박수를 보낸다.
박강섭 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