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문일] 천안함 우연한 공격목표 아니었다

입력 2010-05-17 17:57


“우리 국가 시스템에 대한 기습… 군사·방첩·보안 종합적으로 개혁해야”

일본 전국시대에 오다 노부나가 군 2000명이 이마가와 요시모토 군 2만5000명을 궤멸시킨 오케하자마 전투(1560년). 오다는 이 싸움의 승리로 배후의 위협을 제거했고 나아가 일본 중부 지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오다가 10배 이상의 전력 차이를 극복한 비결은 기습이었다. 이마가와의 패인은 자만과 방심이었다. 오다는 논공행상에서 적장 이마가와의 머리를 베어온 부하를 제치고 적의 본대가 점심 휴식을 하고 있는 장소를 알려준 부하를 수훈으로 삼았다.

천안함이 당한 기습을 돌아보자. 천안함이 우연한 공격 목표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함이 잠수함을 더듬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잠수함도 전함의 위치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더욱이 제한된 시간 안에 기습을 성공시키려면 목표물의 예정 항로를 알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의 우리 함정들은 적의 포 공격에 대비해 항로를 수시로 변경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 1일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오찬 때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때와 달리 이번 사고 직후에 감청된 북한군의 교신기록을 보면, 특이동향이 없다. 정황도 없는데 개입했다고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공공연히 일어난 교전 후 상황과 기습전 후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설정이다. 잘 준비된 기습작전이 성공했다고 곧바로 부산을 떨까. 정보 당국이 아직도 이런 판단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적은 어떻게 천안함의 항로 정보를 얻었을까. 첫째 군 내부로부터 항로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다. 둘째 천안함에서 사용한 휴대전화 전파를 장기간 추적해 항로와 변화 주기를 파악했을 수 있다. 천안함 사건으로 사병들이 일과 후 별 제약 없이 휴대전화를 사용해 외부와 통화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군 관계자는 “문제가 많음을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한번 느슨해진 기강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군의 방첩과 보안 태세에 큰 문제가 있음이 노출됐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제2, 제3의 천안함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천안함의 첫 교훈은 대잠수함 작전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통과를 막는 경제적 제재 수단일 뿐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도 필수적이다. 남해에서 발견된 북한 어뢰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서해에서 활동하던 북한 잠수함에서 유실된 어뢰가 흘러왔다는 군의 설명은 믿기 어렵다. 남해까지 북한 잠수함의 활동 범위가 됐다면 이는 2005년부터 허용된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통행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여타의 제재 수단들에 비해 제주해협 봉쇄는 가장 간단하면서 타격 효과는 크다.

대비해야 할 것은 바다에서의 기습만이 아니다. 18만명이나 되는 북한 특수부대의 존재는 더 위협적이다. 탈북 군인들은 특수부대의 침투가 잠수함뿐 아니라 땅굴을 통해서도 이뤄진다고 증언한다. 개전 직전에 이뤄지는 공군기지와 전투기에 대한 타격은 특수부대의 최우선 작전 목표다.

명백한 군사적 공격을 두고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우리 내부의 적들은 적의 기습을 돕는 최고의 지원군이다. 우리 사회는 1·21 사태에서 울진삼척 공비, 아웅산 테러까지 북의 테러 공격을 규탄하는 데 이견이 없었다. 대한항공기 폭파 때 희생자 유족을 중심으로 의문이 제기되더니, 천안함에 이르러서는 내놓고 북을 옹호하는 세력이 생겼음을 본다. 대변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북한이 천안함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은 당연하다. 특이한 것은 때만 되면 나오는 종북 세력이 이번엔 숨을 죽이고 있는 점이다. 저들이 보기에도 상황이 뻔한데다가 다른 사회 이슈와 얽히지 않은 순수한 남북문제이므로 나서봐야 정체만 부각될 것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반대를 먹고 자란다지만 체제 내에서의 이야기다. 민족이라는 감정적 공동체보다 국가라는 현실적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국민적 자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면 천안함의 희생에 다소나마 위로가 될 것이다. 그런 자각이 한국이라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새로운 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