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례 장로가 기억하는 30년 전 광주의 5월
입력 2010-05-17 15:16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군사독재 정권을 종식시키려 했던 저항 운동이었다. 많은 희생자를 낸 채 진압됐지만 7년 뒤인 87년 6월항쟁으로 ‘부활’했다. 반군사독재 민주화 운동은 결국 전두환 정권을 종식시켰다. 이처럼 역사적 전환점을 가져온 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초석이나 다름없다.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은 오늘, 교회의 역할과 그 의미를 찾아본다.
“5·18은 인간의 욕심이 잉태해 사망을 낳은 사건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저들이 자신의 권력을 쥐기 위해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학살시킨 사건입니다. 그때의 피울음은 아직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어요. 당사자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사과해야 합니다.”
광주 오월어머니집 대표 안성례(73·광주 고백교회 은퇴장로)씨는 30년 전 5월18일 광주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광주기독병원 간호사였던 그녀는 3일간 밤을 꼬박 새며 밀려드는 환자를 받아들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는 광주 시내에 적십자병원과 전남대병원, 기독병원이 있었는데 총칼로 찢긴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희한하게 그때도 올해처럼 21일이 석탄일이었어요. 저희 병원은 금남로에서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지만 19일부터는 여기저기 총상을 입거나 머리가 터지고 대검으로 얼굴이 반으로 찢긴 시민들로 병원이 메어터질 정도였습니다. M16은 정말 독한 총이에요. 총알이 들어간 구멍은 작은데 나온 곳은 이만하거든요. 당시 시민들은 ‘내가 왜 영문도 모르고 총과 칼에 맞아 죽어야 하지’라며 생에 대한 억울함이 솟구쳤던 것 같아요. 그렇게 총상자가 많았는데도 우리 병원으로 실려 온 시민들은 많이 살았어요. 그렇게 보면 빛고을 광주는 정말 하나님이 택하신 곳 같습니다.”
기독병원 직원들은 눈물로 부상당한 시민들을 위해 아침마다 기도했다. 살육의 광란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통치와 치유를 기대한 것이다.
“매일 150명의 직원들은 한 자리에 모여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우리에게 실려오는 저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주십시오. 어떻게 제 나라 군인들에 의해 이렇게 억울하고 처절하게 시민들이 죽어갈 수 있습니까’라고 눈물로 기도했어요. 피가 모자라다보니 의사와 간호사들이 먼저 헌혈에 나섰고요.”
그녀의 남편은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고 명노근 전남대 교수(1933~2000)다. 명 교수는 5·18 당시 수습대책위원으로 희생자를 막기 위해 노력했고 이후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는 1년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5명의 자녀와 아침마다 늘 기도했어요. ‘하나님, 광주사태의 진실을 밝혀주십시오. 지금은 잠시 고난을 받고 있지만 베드로전서 말씀처럼 나중엔 영광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요.”
남편의 구속은 그녀를 ‘투사’로 만들었다. 하루 3시간씩 자며 5·18유가족과 구속자를 돕기와 간호사 업무를 병행했다. 91년 기독병원에서 퇴직한 후 2002년까지 광주시의원을 3차례 지냈다.
“천주교가 5·18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금남로에 가톨릭센터가 있었는데 신부들이 4층 집무실에서 곤봉으로 난타질 하고 대검으로 쑤시는 잔인무도한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한 겁입니다. 반면 교회는 문을 닫았어요. 진상규명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문전박대 당했던 기억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요.”
그녀가 대표를 맡고 있는 광주시 동명동 오월어머니집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들의 쉼터다. 이곳엔 5·18유족과 부상자, 구속자, 행방불명자와 관련된 어머니들이 모인다. 회원은 80명이며, 뜨개질과 상담, 노래 등을 하며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고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시민들의 그 결연한 의지가 5·18정신을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의 혼을 지킨 거죠. 27일 계엄군들은 도청에 있는 시민들을 향해 ‘폭도는 나오라’고 해놓고 나오는 대로 총을 갈겼다고 해요. 이때 구두닦이들은 대학생들을 뒤로 세우고 ‘너희들만큼이라도 살아서 이 나라의 좋은 지도자가 되어 달라’고 막았다고 해요. 그날 새벽, 계엄군의 살벌한 진압을 앞둔 상황에서 남을 대신해 자기가 피 흘리겠다고 했던 말을 생각해봐요. 그리스도의 피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광주=글·사진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