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친’ 스타크래프트… 유명 프로게이머·조폭까지 가담 승부 조작
입력 2010-05-16 21:23
프로게이머 마모(22)씨. 그는 대표적 온라인 e스포츠인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2007년까지 각종 상을 휩쓸며 이른바 ‘본좌’로 불렸다. 그런 그에게 2008년부터 슬럼프가 찾아왔다. 승률은 떨어졌고 그에 비례해 연봉도 줄었다. 장래를 고민하던 그에게 지난해 12월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K3 리그(아마추어축구리그) 선수 정모씨로부터 “프로게이머들의 스타크래프트 경기에 베팅을 하려고 한다. 한쪽에 베팅을 하려고 하니 도와 달라”는 취지의 부탁이었다.
고민하던 마씨는 게이머 진모씨에게 접근, “아는 형이 스타크래프트에 베팅을 하고 있는데 게임에서 져주면 300만원을 주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용돈이 필요했던 진씨는 해당 게임에서 의도적으로 키보드를 어설프게 조작해 경기에서 졌다. 승부 조작을 의뢰한 정씨는 불법 베팅 사이트에 760만원을 걸어 1200만원을 회수했다. 정씨는 진씨에게 300만원을 대가로 건넸다.
마씨는 올 1월까지 정씨 외에도 다른 베팅 참가자들과 수차례 공모, 프로게이머들을 매수해 승부 조작을 교사했다. 그는 승부 조작에 가담한 게이머에게 전달해야 할 돈 200만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승부 조작은 속칭 ‘놀이터’라고 불리는 불법 베팅 사이트에서 진행됐다. 스타크래프트 경기에 베팅을 해오던 게이머 육성학원 운영자 박모(24)씨 등은 배당금을 노리고 마씨처럼 전현직 유명 선수를 통해 경기 출전을 앞둔 프로게이머에게 접근했다. 이들은 “경기에 져주면 돈을 주겠다”며 승률이 좋은 게이머들을 매수했다. 다른 베팅 참가자들이 성적이 좋은 게이머에게 돈을 거는 점을 역이용해 실력이 뒤지는 상대 선수에게 베팅해 거액의 배당금을 챙긴 것이다.
박씨는 이런 수법으로 지난해 9월부터 올 2월까지 11차례 승부를 조작하고 불법 도박 사이트에 9200만원을 베팅해 1억4000여만원으로 불렸다. 챙긴 돈은 4800여만원이었다. 박씨는 선수들에게 매수 비용으로 200만∼650만원을 건넸다. 돈을 받은 게이머는 경기 전 자신의 전술을 미리 알려주거나 실제로 유닛(경기에 등장하는 공격부대) 조종을 어설프게 하는 수법으로 경기에서 졌다. 브로커 역할을 했던 프로게이머 원모(22)씨는 직접 경기에도 출전해 박씨에게 300만원을 받고 일부러 지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위재천)는 16일 스타크래프트 경기의 승부 조작을 의뢰·알선하거나 가담한 혐의(사기 등)로 총 16명을 적발했다. 승부 조작을 통해 거액의 배당금을 챙긴 박씨는 구속 기소, 정씨 등 5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과 게이머들을 연결해준 프로게이머 마씨와 원씨 등 2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이와 함께 승부 조작에 가담한 게이머 진씨 등 6명은 약식기소, 공군에 소속된 게이머 김모(22)씨는 군검찰로 이송됐다. 검찰은 박씨와 함께 승부 조작에 나선 조직폭력배 김모씨를 지명수배했다.
검찰은 프로게이머가 직접 승부 조작에 뛰어들다 적발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프로게이머들이 이런 범행에 가담한 것은 어린 나이에 찾아오는 은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이머들은 보통 10대 중후반에 기량이 절정에 이르고 20대 중반이면 ‘퇴물’ 취급을 받기 쉽다.
검찰 관계자는 “프로게이머들이 20대 중반 이후 마땅한 직업을 찾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쉽게 승부 조작에 가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