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피플-박종원 코리안리 사장] “회사 살린 건 전문성·체력 무장한 野性”
입력 2010-05-17 10:21
“코리안리가 매년 여는 체육대회에 가본 적이 있는데요, 이게 정말 독특해요. 체육대회라기보다 ‘전투 축구’대회더군요. 다른 회사처럼 부서별로 축구 잘하는 몇 사람만 뛰고 나머지는 응원하는 그런 식이 아니에요. 대표 선수뿐 아니라 상대 팀이 지명하면 누구나 뛰어야 하고, 여자도 예외가 없어요. 한 사람이 최소한 2∼3경기를 뛰고, 하루 종일 이기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겁니다. 그걸 보고 나니 코리안리 사람들에게 느꼈던 근성, ‘뭔가 강하다’는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이해되더군요.” (보험업계 임원)
코리안리는 일반 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일 수 있다. 개인 가입자를 상대하는 보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보험을 받은 보험사들은 위험분산을 위해 다시 보험을 들게 된다. 이렇게 보험사가 보험을 드는 게 재보험인데, 코리안리는 아시아 1위 재보험회사다. 직원이 250여명에 불과하지만 2009년 말 현재 수입보험료 4조2500억원, 총 자산 4조3400억원에 당기 순이익이 784억원에 이른다. 금융권의 알짜 중 알짜 회사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엔 난파선에 다름 아니었다. 당시 공기업이었던 코리안리는 회사채 보증에 따른 당기손실이 2800억원에 달해 파산 직전이었다. 이러한 회사를 맡아 놀라운 기업 성공 스토리를 쓴 주인공이 그해 7월 취임한 박종원 사장이다.
재정경제원 공보관 출신인 박 사장이 재임한 12년간 회사의 연평균 성장률은 13%, 순익은 11년 만에 21배로 커졌다. 탁월한 실적을 배경으로 박 사장은 최근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로는 처음으로 5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13일 서울 수송동 사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 사장은 코리안리 재탄생의 비결로 기업문화의 혁신을 주저 없이 꼽았다. “기업문화는 기업의 생명이며, 경영은 기업문화를 혁신해 가는 과정입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듯 기업을 바꾸려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박 사장이 강조하는 기업문화의 요체는 야성(野性)이다. 야성은 자연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본능이다. 그는 신입사원 채용 때도 야성이 있는 인재를 뽑으라고 강조한다.
“제가 말하는 야성은 교양 없이 거친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야성을 갖춘 인재는 삼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첫째는 자연에서 생존하려면 머리를 잘 쓰고 상황판단이 빨라야 하듯 해당분야의 전문성과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둘째는 어떤 극한 상황도 뚫고 나가 목표를 쟁취하겠다는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입니다. 셋째는 체력입니다.”
특히 전문지식과 긍정적 사고, 체력 등 박 사장의 강조하는 세 요소에서 체력이 다른 두 가지의 종속변수가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박 사장은 자주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돼야 실력과 자신감이 배가되고 혁신에 가속이 붙는다”며 체력단련을 기업 혁신의 주요한 수단으로 강조한다.
전투축구대회로도 불리는 체육대회도 근성과 체력을 길러 기업문화를 혁신하기 위한 수단이다. 특히 2004년부터 6년간 전 직원이 지리산 덕유산 소백산 설악산 등 백두대간 250㎞를 종주한 것은 박 사장이 추구하는 야성 리더십의 핵심 프로젝트였다.
“매년 8월 말 백두대간 종주에 나서는데 2박3일간 30시간 이상 걷습니다. 점심은 간이식량으로 때우죠. 비까지 내려 빗물 반, 밥 반으로 요기를 한 적도 많습니다. 밤에는 텐트 속에서 칼잠자고요. 체력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극한체험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한계를 이겨냈다는 자신감과 동료들과의 일체감이 회사를 변화시키는 데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전남득 상무)
하지만 박 사장의 야성 리더십에 직원들이 호응한 것은 솔선수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6년간 직원과 똑같이 백두대간 종주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행렬의 맨 앞에서 임직원들을 이끌었다.
앞으로 직원들에게 어떤 CEO로 기억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박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버지, 형님 같은 CEO”라고 했다. 호랑이상의 박 사장의 답변으로 의외라는 표정을 기자가 짓자 박 사장은 최근 신입 여직원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를 들고 왔다. “어제 사장님이 저희들에게 저녁을 사신 목적이 ‘사원 감동’이라면 그 목표는 1000% 달성됐습니다. 사장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차기 경영자 수업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회사를 위해서라면 저의 모든 것을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병우 기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