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배병우] 윌리엄 마틴과 김중수

입력 2010-05-16 18:57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가 오늘날 같은 권위와 독립성을 갖추는 데 초석을 놓은 인물이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이다. 1951∼70년 19년간 연준 의장으로 재임, 최장수 의장인 그는 ‘연준의 구원자(Savior of the Federal Reserve)’로 불린다. 백악관의 간섭으로부터 연준을 구했다는 것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연준 청사의 부속건물인 마틴 빌딩은 그를 기념해 지은 것이다.

FRB의장이 되기 직전 재무부 차관이었던 마틴은 당시 대통령인 트루먼의 사람으로 분류됐다. 재무부와 FRB의 갈등에 골치를 썩이던 트루먼은 1951년 토머스 맥케이브 의장이 물러나자 쾌재를 부르며 마틴을 신임 의장에 앉혔다. 하지만 트루먼이 후회하는 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비용 조달을 위해 저금리 체제를 유지하도록 압박하는 백악관과 재무부에 반발, 독립적인 금리 정책을 전개했다. 퇴임 뒤 우연히 뉴욕의 한 파티장에서 마틴을 만난 트루먼은 “배신자”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틴이 정부와 대립각만 세운 것은 아니었다.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던 1962년에는 연준 이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무부의 요청에 따라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하지만 통화정책의 독립성이라는 원칙은 양보하지 않았다.

마틴 의장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여러 모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김 총재는 대통령의 최측근 경제참모인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그는 지금 통화정책의 자율성과 중앙은행의 본분과 관련된 중요한 시험대에 서 있다.

김 총재의 첫 시험대는 금리 정책에 대한 관료들의 공공연한 언급이다. 그동안 통화정책에 대한 간섭으로 비칠 수 있다며 금기처럼 여겨지던 금리 결정에 대한 관료들의 의견 표출이 이제는 새로운 관행이 되는 양상이다. 이미 시장에는 통화정책을 한은과 정부가 반분(半分)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차관이 금리 결정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는 열석발언권 행사에 대한 대응도 과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금융위기도 끝나고 경제정상화가 새로운 경제운용기조가 되고 있는 만큼 비상수단의 성격으로 도입한 열석발언권을 철회하도록 정부를 설득하는 일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재정부 차관이 금리 결정을 위한 표결 시에는 자리를 뜨는 등의 규정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배병우 경제부 차장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