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두 화백 ‘너에게로 U턴하다’ 개인전… “느린 곡선의 미학 내 마음 속으로 귀향”

입력 2010-05-16 17:57


작가는 걸었던 길을 다시 돌아오는 중이다. 1982년 중앙대 한국화과를 나온 뒤 붓과 먹 그리고 한지를 벗삼아 30년 가까이 걸었던 그림길이다. 되돌아오는 유턴의 종착지는 작가 자신의 마음이다. 돌아보면 아스라한 길이었다. 중앙미술대전, 석남미술상, 부일미술대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하고 영화 ‘취화선’에서 천재화가 장승업 역의 최민식 대신에 그림을 그리는 등 보람있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이쯤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국화가 김선두(52·중앙대 교수). “평소 친하게 지낸 같은 고향(전남 장흥)의 이청준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어느 날, 어린아이가 기와에 너무나 순진무구하게 꽃을 그린 것을 우연히 보고 이것이다 싶었어요.” 이 꽃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작가는 먹과 분채로 화면에 옮기고 교통신호등을 넣어 ‘너에게로 U턴하다’라고 이름 붙였다.

“네거리가 좌회전 깜박이에 한눈팔기 시를 쓰고 횡단보도 이어서 느린 보행을 읊을 때 나는 너에게로 U턴한다.” 여기서 ‘너’는 때묻지 않은 어린이의 마음이자, 그 순간으로 회귀하고 싶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심정으로 붓을 잡으니 그림이 훨씬 자유로워지고 더욱 활달해졌다. 그렇게 그린 신작으로 20일부터 6월 12일까지 서울 팔판동 리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김선두의 그림에서 선은 대부분 굽어있다. 현대 도시의 삶이 직선이라면 마음 속 삶은 곡선이라 할 것이다. 곡선은 느리다. 작가는 느린 곡선의 미학을 통해 우리네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다.

참새 한 마리 매화 가지에 앉아 놀고 있는 ‘어느 봄날’, 소리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그린 ‘탁류’ 등 그의 그림에는 느린 선의 꿈과 노래, 사랑과 낭만, 삶의 넉넉한 여백이 함께 한다.

“나는 향기를 눈으로 음미하지. 지난 날의 먼 향기까지”라고 말하는 그림 ‘화가의 눈’은 자신만의 예술세계에 대한 향취를 들려주고, “오늘 내 마음 속 화폭엔 멀리 있는 그대가 그리운 향기로 더욱 또렷하다”라고 읊조리는 그림 ‘가까운 원경’은 반어법과 공감각을 활용해 시공을 넘나드는 사랑에 몰두하는 작가의 관심과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작가는 글쓰기와 그림을 병행한다. 봄날 꽃이 만개한 순간의 절정을 담은 ‘싱그러운 폭죽’, 정신없이 달려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 길은 앞이 아니라 뒤로 가는 길, 밖이 아니라 안으로 난 길”임을 강조하는 ‘뒤로 난 길’, “시작도 끝도 없는 선 한 줄, 느리게 가고 있네”라고 설명하는 ‘지렁이’ 등 작품을 보고있노라면 시적 서정을 느낌과 동시에 잠시 여유를 갖고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는 처음에는 도시 주변인과 서커스 사람들을 그렸다. 서커스 연작에서는 전통 장지기법을 사용해 선과 색을 쌓는 작업에 매달렸다. 도시 주변인과 서커스 광대는 잡풀들로 형상화했다. 잡풀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간직한 민초들이라고나 할까. 그러고보면 그가 유턴하는 종착지 ‘너’는 우리 모두의 고향인지도 모르겠다(02-3210-0467).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