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대장 안나푸르나 등정 생중계한 정하영씨, 히말라야 8000m급 촬영만 9번 ‘山 감독’

입력 2010-05-14 18:34


“베이스 캠프로 내려와서 딸한테 전화했어요. 아이가 놀라며 ‘아빠가 박대기 기자보다 더 유명해졌어!’라고 외치더군요. 그 소리 듣고 어찌나 웃었던지….”

정하영(44·사진) KBS 촬영감독은 지난달 27일 산악인 오은선 대장과 히말라야의 고봉 안나푸르나의 정상을 밟은 뒤 벼락스타가 됐다. 사람들은 TV에서 오 대장이 여성 산악인 중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한 순간을 보면서 ‘도대체 저걸 찍은 감독이 누구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13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만난 정 감독은 “귀국하자마자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과 사람들의 축하 전화에 정신이 없다”라며 큰 환대에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전문 산악인도 아닌 제가 오 대장과 함께 안나푸르나에 올라서 놀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번이 히말라야 8000m급 촬영에 참여한 게 9번째예요. 1999년부터 엄홍길 대장과 4번, 오 대장과는 5번 히말라야를 찾았어요.”

정 감독은 11년 전 엄홍길 대장이 낭가파르밧(8125m)을 등정할 때 촬영팀에 합류하면서 산악 촬영의 세계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히말라야에 대한 호기심으로 촬영팀에 합류했어요. 산악을 모를 때였지요. 그저 남들처럼 취미로 등반을 즐기는 정도였죠. 처음 낭가파르밧 때는 체력만 믿다가 4200m 베이스 캠프에서 뻗었어요. 3일간 인사불성이 돼서 한 컷도 못 찍고 내내 누워있었습니다(웃음).”

생사를 넘나든 경험은 묘하게도 정 감독을 히말라야로 이끌었다.

“히말라야 안 가봤지요? 안 가봤으면 말을 마요. 누워있으면 나를 둘러싼 산과 푸른 하늘이 그림처럼 쏟아져요. 오를 때마다 고생이 너무 심해서 ‘절대 다시 안 온다’고 다짐하지만, 이상하게도 서울에 오면 자꾸 히말라야가 생각나서 발길이 가더군요.”

KBS는 ‘여기는 안나푸르나’ 방송을 위해 1년 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 감독 개인적으로는 11년 동안의 산악 촬영 경험이 이 프로젝트를 위해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가 ‘오은선 대장 갑니다. 한 발 한 발 갑니다’라고 중계 방송하는 모습은 십여 년 전부터 생각한 거지요. 너무나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는데, 막상 정상에 다다르니까 정신이 혼미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생각이 안 나더군요.”

하지만 정 감독은 당시 급박한 상황에서도 생생한 중계를 펼쳤다. “정상은 굉장히 맑고요, 히말라야의 하늘이 한껏 맑은 하늘로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정상 정복을 축하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인구에 회자됐다.

“베이스캠프에서 ‘화면 잘 나온다’는 확답을 듣고는 오 대장을 카메라로 좇았어요. 오 대장이 정상을 밟자, 저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서 멘트가 터졌어요. 울먹인 것은 오 대장이 너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에요.”

촬영감독으로서 ‘여기는 안나푸르나’의 화면이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정상에서 오 대장 인터뷰도 길게 하고 히말라야 전경을 넓게 찍거나 고정하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었겠죠.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웃음).”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