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빈후드’, 빛나는 연기와 볼거리… 영웅의 탄생을 그리다

입력 2010-05-14 18:05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작인 ‘로빈후드’는 여러모로 영화 ‘글라디에이터’를 떠오르게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과 러셀 크로가 ‘글라디에이터’ 이후 10년 만에 다시 뭉쳤기 때문이다. 포스터에서부터 ‘글라디에이터’의 막시무스와 비슷한 외모, 분위기를 풍기는 러셀 크로의 모습도 두 영화에 일체감을 준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로빈후드의 이야기를 ‘글라디에이터’처럼 전쟁이야기로 변형시켰다.

제목은 ‘로빈후드’지만 영화는 의적 로빈후드의 활약상을 다루지 않는다. 정확히 로빈후드가 되기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프리퀄 영화다. 배트맨의 탄생을 다뤘던 ‘배트맨 비긴즈’와 비슷한 위치다.

덕분에 익숙해서 지루할 뻔한 로빈후드의 이야기는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로빈후드의 본명은 로빈 롱스트라이드다. 13세기 영국, 평민 출신이지만 뛰어난 활쏘기 실력을 갖춘 롱스트라이드는 리처드 왕의 용병으로 프랑스 전투에서 대 활약을 펼쳐 왕의 신임을 얻는다. 리처드 왕이 죽고 새로 왕위에 오른 존 왕은 폭정으로 백성을 피폐하게 만든다. 프랑스에 영국으로 돌아온 롱스트라이드는 이런 참담한 상황을 접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유를 위해 왕권에 도전하다 처형당한 사실을 알고 결국 반역자의 길을 택하게 된다.

영화는 숲에 숨어 지내는 의적 수준의 로빈후드를 지우고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로빈후드를 내세워 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웠다. 의적활동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낯설 수도 있지만 웅장한 스케일의 이야기와 대규모 전투장면 등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매력이 있다. 특히 영화 처음과 끝부분에 하늘을 까맣게 덮어버리는 화살 장면은 시선을 압도한다.

이야기와 볼거리를 촘촘하게 엮어내는 스콧 감독의 솜씨는 여전하다. 남성적인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크로의 연기도 관객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칸 영화제에 참석한 크로는 지난 1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이전 로빈후드 영화들은 주인공의 동기나 뒷이야기에 대해 만족할 만한 느낌을 주지 못했다”면서 “이 영화는 영웅의 탄생을 다루고 있고 민주주의, 민중을 위한 캐릭터를 그려 이전과 다른 굉장히 명료한 변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콧 감독은 최근 수술한 무릎의 회복이 늦어져 칸에 오지 못했다. 영화는 속편을 암시하며 끝난다. 크로는 “같은 감독에 같은 규모라면 출연할 뜻이 있다”고 덧붙였다. 15세가.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