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운찬 국무총리님 맞습니까?
입력 2010-05-14 17:12
어제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정운찬 국무총리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회의장에 들어갈 때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자신의 실언(失言) 때문일 것으로 해석됐다.
정 총리는 그제 천안함 참사 구조작업 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 유가족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불쑥 “잘못된 약속도 지키려는 여자가 있는데, 누구인지 아세요?”라고 물었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다. 정 총리는 앞서 “약속이 잘못됐다면 빨리 고치는 것이 현명하다. 박 전 대표가 제 말을 한번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정 총리 발언은 부적절했다. 유족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얘기를 꺼낸 것부터 그렇다. ‘여자’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정 총리 스스로 실수했다고 느꼈는지 곧바로 농담이라며 수습하려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돼버렸다. 박 전 대표 진영과 ‘친박’을 표방하는 군소정당들은 발끈했다. 총리 사퇴 주장까지 나왔다. 한나라당은 정 총리 발언이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세종시에 관한 한나라당 내 여론수렴 과정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
예전에도 정 총리는 말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4선의 독신이었던 고 이용삼 민주당 의원 빈소를 찾아 유족에게 ‘초선 의원’ ‘자제분이 어려서’라는 황당한 말을 했다가 사과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정 총리가 어려움을 자초하고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반어법과 냉소적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언어와 태도에 관한 한 나는 분명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며 “국민들에게 믿음과 안정감을 주는 품격 있는 언어를 사용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정 총리 역시 연이은 말실수를 자책하고 있을 듯하다. 교수로서 자유롭게 말하던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나, ‘국무총리 정운찬’은 달라야 한다.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