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歷 50년 맞아 시집 ‘하늘의 맨살’ 낸 在美 시인 마종기씨

입력 2010-05-14 17:35


“異國서 외로움 달래려 시 썼는데

그 시가 고국에서 잘 살아줘 감사”


“외로움을 달래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시를 썼고 시는 내 삶의 방향타가 됐습니다. 내 시들이 나 대신 고국에서 잘 살아준 게 고맙고 감개무량합니다.”

재미(在美) 시인 마종기(71)가 시력(詩歷) 50년을 맞아 신작 시집과 자신의 시 인생을 정리한 시작(詩作) 에세이집을 펴냈다.

마 시인은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66)의 아들로 196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이듬해 첫 시집도 냈다. 하지만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65년 한일회담 반대성명에 참여했다가 끌려가 고초를 당했고, 이듬해 6월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이오와시에서 30여년을 방사선과 전문의로 일하다 2002년 은퇴했지만 그는 4∼6년 간격으로 시집을 출간할 정도로 꾸준히 시를 써왔다. 특이한 자신의 경험을 서정적이고 세련된 언어로 풀어낸 그의 시들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러 문학상을 안겨줬다. 시인은 은퇴 후 매년 봄 가을로 몇 달 간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신작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사)은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2006) 이후 4년 만에 선보인 열두 번째 시집이다. 그는 이 시집에서 40여년동안 타국에서 살아오며 노년을 맞은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한평생이라는 것이/길고 지루하기만 한 것인지,/덧없이 짧기만 한 것인지/가늠할 수 없는 고개까지 왔습니다./그대를 지켜만 보며, 기다리며/나는 어느 변방에서 산 것입니까.”(‘디아스포라의 황혼’ 일부) 고국을 향한 그리움은 그의 삶과 시를 지탱해 주는 힘이었다.

“이제 알겠니,/내가 왜 너와 한몸이/되고 싶어 했는지.//(중략) 그리고 이제 알겠니,/내가 왜 더 가까이 다가가/기회만 있으면 네 몸에 비벼댔는지,/광양의 비바람을 가리고/설레는 입술을 맞추고 말았는지.”(‘국경은 메마르다’ 일부)

그러나 이번 시집에서는 물리적 장소로서의 고국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편도 눈에 띈다. “나는 왜 오래 장소에만 집착하며 살아왔는지,/(중략)//그래서 순천에서 만난 억새는 놀라움이었어./북해에 살던 그 풀들도 친척이 된다는 말,/얼마나 내 묵은 심사를 편하게 해주었던지.//나는 이제 아무 데나 엎드려 잠잘 수 있다.”(‘북해의 억새’ 일부)

시작(詩作) 에세이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비채)는 시인으로서의 50년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 자신의 시 중에서 50편을 골라 시가 쓰여진 배경과 시에 얽힌 사연들을 풀어놓는다. 이화여대 1학년때 깜짝 결혼을 했던 누이동생을 주제로 의대 졸업반 때 썼던 ‘연가4’, 만리 타국에서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들었던 소회를 담은 ‘섬’ 등이 실려 있다. 외로운 이민 생활을 함께 견디며 살다 무장강도에게 목숨을 잃은 동생을 생각하며 쓴 시(‘겨울묘지’),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아내를 향해 쓴 시(‘꿈꾸는 당신’)도 있다.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그 긴 세월 내가 시를 안 썼으면 아직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나는 그 누구도 아닌, 외로웠던 나 자신을 위해 시를 썼을 뿐”이라고 밝혔

다.

시인은 오는 18일 서울 대학로에서 시인 이희중 정끝별 권혁웅 이병률, 2009년 함께 서간집을 펴냈던 가수 루시드폴 등과 함께 시력 50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갖는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