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 이야기… 이나미 소설집 ‘수상한 하루’
입력 2010-05-14 17:35
소설가 이나미(49)가 ‘빙화’(2006) 이후 6년 만에 소설집 ‘수상한 하루’(랜덤하우스)를 펴냈다.
수록작 9편은 소재나 주인공이 제각각이지만 모두 세상 낮은 곳에서 구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하철 잡상인, 고학력 취업 준비생, 거리의 상인, 입원환자들, 마트 계산원, 폭력에 내몰린 병사….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이다.
수록작 ‘지상에서의 마지막 방 한 칸’은 허름한 빌라 4층에서 땅거북 ‘미니’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다. 지방 국립대학 출신인 그녀는 박사 과정 논문 학기만 남겨둔 상태에서 취업하러 서울로 올라왔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하루 종일 인터넷 구직 광고를 뒤지지만 그녀를 필요로 하거나 기다리는 일자리는 없다. 그녀의 신세는 ‘미니’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가슴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시린 바람과 답답한 현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조바심으로 울에 갇힌 짐승처럼 좁은 방 안을 서성이던 나나 상자 속에 갇힌 녀석이나 처지는 매 한가지였다.”(176쪽)
‘집게와 말미잘’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신분을 속이고 이메일을 주고 받는 사람들을 그렸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여주인공은 의대 교수라고 속이고 사업가 남성과 메일을 주고 받는다. 가상의 공간지만 그녀는 여교수가 돼 사업가와 어울리는 환상에 젖는다. 하지만 상대도 성공한 사업가가 아니다. 미국에서 실패한 뒤 귀국해 식당을 운영하지만 망하기 직전이다. 그들은 익명의 그늘에 숨어 환상을 꿈꾸지만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된다. ‘푸른 푸른’은 군부대 내 폭력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택한 남동생의 이야기를 누나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자크린느의 눈물’은 지하철 잡상인들을 등장시켜 대구지하철 참사로 숨진 소시민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드러낸다. 병실이란 비좁은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모시 바구니’, 무명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해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인 ‘파묘꾼’에서도 작가의 시선은 소외된 사람들을 응시한다.
작가는 “밑바탕에서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19세기 러시아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렸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관심을 보내야 한다는 걸 역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88년 등단한 그는 소설집 ‘얼음가시’, ‘실크로드의 자유인’ 등을 냈으며, 단편 ‘마디’로 2008년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했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