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동수] 전문고·전문대 제대로 살려야 한다

입력 2010-05-13 18:16


“우리 사회의 직업교육 경시 풍조와 학력 인플레가 고학력 실업자 양산했다”

초·중학교에서 공부를 꽤 잘했던 청년을 알고 있다. 고교생 시절 잠시 친구들을 잘못 만나 삐끗하는 바람에 수능을 망쳤다. 그래도 지방의 4년제 대학은 갈 점수가 됐지만 서울소재 전문대를 선택했다. 좋아하는 학과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는 후회했다. 전문대 타이틀이 준 사회적 낙인과 차별 탓이었다. 그는 결국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해 버렸다.

지난 4일부터 전국의 145개 전문대가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문대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법적 차별을 철폐해 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대는 30여년간 고등교육 부문의 40% 이상을 맡아 500여만명의 전문 직업인을 양성했으나 수업연한 규제, 열악한 재정 지원 등 직업교육 경시 정책으로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전문대가 겪는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차별과 직업교육 경시 풍조에서 온다. 일례로 전문대 졸업자와 4년제 졸업자 간 임금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추세다. 고졸자의 임금을 100으로 볼 때 전문대 졸업자의 임금은 1983년 139에서 현재는 오히려 104로 떨어져 있다. 이에 비해 4년제 졸업생은 158로 전문대 졸업자와 큰 격차를 벌리고 있다.

4년제 대학 졸업자보다 전문대 졸업자가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격차가 너무 큰 게 문제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일반 대학과 우리의 전문대 격에 해당하는 직업학교 출신자의 임금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 직업학교 출신자가 돈을 더 많이 받는 경우도 많다. 유럽 각국의 대학 진학률이 50% 내외에 불과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는 직업 교육을 너무 경시한다. 스웨덴에선 고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취업을 선택, 직장 생활을 하다 필요하면 대학 진학을 한다. 아일랜드에선 고교 1년생만 돼도 학생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토록 권장한다. 이에 비해 고학력 실업자가 넘쳐나도 오로지 4년제 대학만 가려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 비정상적이다.

더 늦기 전에 직업교육을 중시하는 풍토로 바꿔가야 한다. 높은 대학 진학률이 선진국의 징표처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직업교육의 강화가 곧 교육 선진화다. OECD국가들은 이미 급변하는 사회구조에 맞춰 교육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앞서가는 핀란드의 경우 정부가 직업교육의 효율성과 수월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취업률 제고와 국가경쟁력 향상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직업교육 강화에 신경을 쓰는 것은 고무적이다. 엊그제는 고등학교 직업교육 선진화 방안도 발표됐다. 현재 691개인 전문계고를 2015년까지 마이스터고 50곳과 특성화고 350곳 등으로 정예화하고, ‘선취업 후진학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산업계의 요구와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방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여기다 고등교육 단계에서의 직업교육 강화를 위한 전문대 활성화 방안도 포함돼야 한다. 전문대를 선진국의 고등 직업학교처럼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등교육 단계에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를 위치시키고, 고등교육 단계에서 전문대를 집중 육성하면 이상적인 선진형 직업 교육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일반 4년제 대학은 구조조정으로 그 수를 대폭 줄인 뒤 더 높은 차원의 연구개발을 위한 특별 교육기관으로 위상을 재정립하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이다. 우리 사회엔 여전히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의식이 팽배하다. 이런 사회적 풍토 때문에 자기 적성과 형편은 무시하고 오직 4년제 대학만 고집해 졸업후 실업자로 떠도는 현실은 딱하기만 하다.

학교 간판이나 학력으로 승부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어떤 학력을 가졌든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라야 선진사회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좀 더 강력한 의지로 학력 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들을 추진해야 한다.

박동수논설위원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