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천안함 이후
입력 2010-05-13 21:59
다음 주 예정된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 발표 이후,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실력이 진짜 드러나게 된다.
한반도 안보를 둘러싼 국제 외교는 물론이고, 국내 상황을 관리하는 내치(內治)까지 모두 포함된다. 천안함 침몰 결과를 놓고 우리 정부가 어떻게 방향을 잡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한반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변수’가 있지만, 당사자로서 한국 정부의 생각과 전략은 천안함 이후 판짜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분위기로 봐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명백한 증거’를 내놓든, 이에 준하는 증거를 내놓든 결론은 북한 소행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면 북한은 남한의 조작이니, 뒤집어씌우기니 하는 습관적인 행태를 보일 게 뻔하다. 고도의 외교적 전략과 국내 상황 관리는 그때부터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 이후 당사자로서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선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단호하고 명확한 언급을 끌어내야 한다. 발표 직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천안함 문제는 국제 이슈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국제안보 문제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일종의 기준으로 작용될 수 있다. 유엔 안보리를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현재까지 실무 차원이나 장관급 레벨에서는 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적극적인 태도가 보이면, 미 행정부나 정치권이 한·미동맹의 이익에 맞게 보다 신속히 움직이게 된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대외 전략에 한껏 보조를 맞춰왔다. 공식, 비공식 채널로 충분히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야 사상 최고의 동맹관계라는 말에 걸맞지 않을까.
미국의 단호한 입장은 중국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적절한 의무와 행동을 다해야 한다는 신호 효과도 있다.
둘째, 중국을 최소한 중간지대에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최근 고위인사들의 언급을 통해 “선입관을 갖고 결론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한 등거리 외교라 하지만, 사실 손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다. 그런 중국에 대해 국제사회의 강국으로서, G2의 한 축으로서의 제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 아니 조사 결과에 명분이 있으므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유엔 안보리에 가더라도 신속하고 단호한 결정이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국내 안보적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행동이 필요하다. 적지 않은 국민들이 뭔가 응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해에서의 기동훈련이나 한·미 동맹군의 합동군사훈련 같은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공세적 방어 조치를 공표하고 즉각 행동에 들어가는 게 필요하다. 그동안 NLL을 침범한 북한 함정에 대해 충돌을 피하기 위한 회피적 대응이나 경고로 끝냈던 데서 탈피, 적극적이고 단호한 물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 조짐이 있다면 선제적 방어조치도 포함돼야 한다.
넷째, 국내 상황 관리다. 일부 극우보수 인사들은 군사적 보복조치를 주장할 것이다. 조치가 미흡하다고 생각하면 이들은 정부가 국민 보호를 내팽개쳤다고 공격할지 모른다. 반대로 좌파 세력은 불충분한 증거로 북한을 몰아세운다거나,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낡아 문드러진 냉전 이념의 양쪽 끄트머리에 서서 떠드는 이런 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필요는 전혀 없다. 이 부분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어떤 건지 진지하게 평가받게 될 것이다.
다음 주, 이명박 정부는 총제적으로 시험대에 올라서게 된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위한 정치·외교적 환경 조성, 중장기적인 남북관계 포석, 여론 등 국내 상황 관리. 우리 정부는 상충되는 이 세 가지 측면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단호하지만, 한반도 상황관리에 성과가 있는 실용적 능력을 기대한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