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은 거의 매일 궁궐서 격구를 즐겼다
입력 2010-05-13 21:34
우리가 몰랐던 조선 /장학근/플래닛미디어
UFO가 놀고…/이성규/살림프렌즈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는 활쏘기에 능한 무장(武將) 출신이다. 왕위에 오르기 전 일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러나 즉위 후에는 더 이상 활을 잡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됐는데 바로 ‘꽃 가꾸기’였다. 이성계는 언제 발호할지 모르는 고려왕조의 추종세력과 현 정권의 불만세력들로 인해 마음이 무겁고 불안했다. 그는 신하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수시로 화원을 찾아 꽃삽으로 흙을 파고 꽃씨를 뿌려 정성껏 키우며 마음의 안정을 꾀했다.
#조선 2대 왕 정종(1357∼1419)은 궁궐에서 거의 매일 격구를 즐겼다. 격구는 말을 타고 긴 장대로 공을 낚아채 골문에 넣는 경기로 젊은 무관과 종친들이 즐겨하던 공놀이다. 왕위에 올랐지만 실권은 동생인 세자 방원(태종)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정종은 정사를 방원에게 맡기고 격구에 빠져 살다시피했다.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된 뒤에도 매일 종친을 불러 격구를 즐겼다. 병약했던 정종은 그 덕분인지 건강하게 살아 환갑을 넘겼다.
사학자인 장학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소장이 쓴 ‘우리가 몰랐던 조선’(플래닛미디어)은 500년 조선왕조의 거시사와 미시사를 아우르는 역사서다. 조선왕조가 남긴 방대한 국가기록인 ‘조선왕조실록’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중요 사건과 주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 틀에 박힌 역사서가 아니다. 정사(正史) 위주에서 탈피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왕의 인간적인 면모, 서민들의 일상사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연산군(1476∼1506)은 두 차례의 사화(士禍)를 일으킨 폭군이었지만 자작시 110여편을 남겼고, 개인 시집도 출간한 시인이었다. 실록의 하나인 ‘연산군일기’에 수록된 그의 첫 시는 기침과 열로 몸이 불편해 ‘임금의 수업’인 경연에 나가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산군은 동물수집광이기도 했다. 당나귀 망아지 양 개 등 온갖 동물들을 광적으로 수집해 국고가 낭비되고 국정이 피폐해질 정도였다.
세조(1417∼1468)는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를 통해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옥좌를 차지한 강골이지만 예능적 소질도 겸비한 왕이었다. 가야금 비파 피리 등 악기 연주에 능했다. 아버지 세종은 피리 연주로 관중을 매료시킨 수양대군(세조)을 가리켜 “우리나라에 음악을 아는 사람은 오직 수양뿐이다. 이런 연주는 전무후무할 것이다”라고 극찬했을 정도였다.
‘선조실록’에는 조선시대 남성들 사이에 귀고리 착용이 유행했던 사실도 언급돼 있다.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사내아이들이 귀를 뚫어 귀고리를 달고 다녀서 중국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 오랑캐의 풍속을 일체 고치도록 중외에 알리도록 하라.”(선조 5년 9월 28일 기록)
억울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신문고가 실제로는 국가 전복을 막기 위한 정보수집용이었다는 내용, 삶의 터전을 잃고 궁궐을 향해 ‘나라님도 도둑’이라고 외친 어민, 답안지에 이름을 쓰지 않아 과거 급제가 취소된 사대부 자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일화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 영조와 사도세자 부인, 장인의 솔직한 심정, 고종이 원했던 근대화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 등도 담겨 있다. 조선의 감춰진 얼굴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칼럼니스트 이성규의 ‘UFO가 날고 트랜스젠더 닭이 울었사옵니다’(살림프렌즈)는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신비로운 과학 이야기를 모았다. 조선 사회를 들끌게 했던 해괴한 비사들을 역사적 시각과 과학적 통찰력으로 풀어낸 책으로 ‘조선왕조실록’을 과학적 시각에서 접근한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명종실록’에는 1559년 10월 경상도 의성의 민가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 사건이 기록돼 있다. 저자는 이 사건을 명종이 성년이 됐는데도 계속 정사에 간섭했던 문정왕후와 외척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했다. 1565년 한강 두모포(지금의 옥수동 한강변)에서 어부의 그물에 괴상한 물고기가 걸린 이야기도 들려준다. 당시 붙잡힌 괴생명체는 “흰 빛깔에 비늘이 없고 턱 밑에 지느러미가 3개 있으며 꼬리가 키처럼 크고 머리 위에 구멍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저자는 이 물고기를 당시 두모포에서 공양을 드리던 당대의 요부 정난정의 몰락과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광해군 때인 1609년 8월 25일 간성과 원주, 강릉에서 오전 10시쯤 이상한 물체가 발견됐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 모양은 햇무리, 베, 호리병 등 둥글고 긴 물체와 비슷했고, 지나갈 때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가 나고 연기가 피어올랐다고 한다. 저자는 이 물체가 유성일 지도 모른다고 밝히면서도 UFO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은 딱딱한 기록물로 여겨져 왔던 ‘조선왕조실록’이 이야기의 보물창고임을 새삼 알려준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