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의 이건 뭐야?] 낙파라치

입력 2010-05-13 14:45


요즘 불법 낙태 단속이 강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느 병원에서는 낙태 수술을 해 주지 않는다. 또 수술 비용도 천정부지로 상승해 몇백만원은 예사고, 중국 등지에서 원정 출산이 아니라 원정 낙태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애당초 원치 않는 생명은 움트지 않도록 주의했어야 한다. 그런 원칙에 동의하더라도 내 자궁을 단속하는 국가에 조금의 의문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아이가 생긴 자궁은 그 여성의 것이 아니라 국가에 귀속된 자산이 돼 버린 듯하다. 더구나 낙태를 막는 게 저출산 해결책 중 하나라니.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낙태를 ‘저지’당한 결과 태어나게 된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얼마나 책임져 줄 수 있을까.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을 접어두고 여성을 윽박지르는 이런 방식이 과연 출산율을 얼마나 높여 줄지 의문이다.

우습게도 곧 엄마가 될 내 친구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분만을 담당하는 병원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출산율을 높여 줄 일등공신이 될 산모가 아이 낳을 병원을 찾지 못해 고충을 겪고 있는데 출산 장려 대책은 낙태를 틀어막는 것 빼고 무엇이 행해지고 있는 것일까.

어쨌건 낙태를 원하는 여성뿐만 아니라 가임기이지만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거나 아예 앞으로도 아이 낳을 계획이 없는 여성은 국가의 공적 취급을 받는다. 특히 만만한 젊은 여성은 아이를 낳아 생명을 계승할 고귀한 의무를 방기하고 현재를 즐기며 살아간다는 식으로 흔히 매도당한다. 하지만 이런 표피적 비난보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혼의 결혼 적령기이며 가임기 여성인 나 역시 일단 결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지만 요행히 결혼에 성공한다 해도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 할 배짱이 없는 것이다. 재주라곤 글 좀 끼적이는 것뿐인데 돈이 될 만큼 그럴싸한 수준의 재주도 아니다 보니 고만고만한 원고료 등으로 생활하는 지금 형편이 앞으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런 계급에 속하는 내가 만날 수 있는 배우자 역시 비슷한 사람일 것이라 판단하는 게 현실적이다. 이 부부가 세상에 탄생한 아이에게 얼마나 베풀 수 있을까.

계층 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는 현 사회에서, 제 밥그릇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요즘 애들 밥그릇은 부모가 가진 밥솥 규모에 따라 아이가 장차 누릴 수 있는 밥그릇 부피가 미리 정해진다. 당장 내 밥그릇 해결할 수 있을지도 아득한데 자식 먹일 쌀이며 각종 사교육을 베풀어 줄 자신도 없다. 그러니 혜택 받고 큰 아이들 틈에서 우리 아이가 기죽을 걸 생각하면 애 낳을 배짱이 쉽게 생길 리 없다. 출산율 저하의 주범은 이기적인 요즘 젊은 것들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는, 서글프게도 아이 한번 만들어 볼 배짱 없이 사회적으로 지레 거세당해 버린 건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