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형사가 늙는다-(하) 형사 고령화를 막으려면] “형사 콜롬보처럼 수년씩 범인 쫓는 여건 조성해야”

입력 2010-05-12 21:52


형사 고령화를 막으려면 20∼30대 경찰들이 형사 업무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확실하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본보가 12일 만난 일선 형사와 전문가들은 근무 여건 향상, 인사 및 채용시스템 개선, 실적주의 타파 등을 형사 고령화의 대책으로 제시했다.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1970∼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속 주인공인 형사 콜롬보가 2010년 우리나라의 강력팀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실적부족으로 쫓겨났거나 변변치 못한 절도범이나 잡으러 다녔을 것이다.



30년 경력의 한 강력팀장은 “콜롬보는 살인범 한 명을 잡기 위해 11년 동안 수사한다. 우리나라에서 11년 동안 수사한다고 그러면 다 잘릴 것”이라며 “실적을 요구할 게 아니라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한다”고 말했다.

젊은 형사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강력범을 잡는 멋진 형사의 모습을 그리면서 형사과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인과 데이트하거나 승진 시험을 공부할 시간이 없고, 월급도 적은 상황에서 실적주의에 파묻히면서 형사 일에 회의감이 들기 일쑤다.

서울시내 A경찰서 강력팀 소속 김모(43) 형사는 “잠복해서 아리랑 치기를 잡으나 볼펜 한 자루 훔친 절도범을 잡으나 똑같이 10점”이라며 “중요 범죄자를 따라다니다가는 팀 실적만 망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거 과정의 위험성이나 노력 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실적 평가 점수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젊은 형사일수록 검찰에 집중된 수사권을 조정해 형사들에게 권한을 나눠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 강북지역에 근무하는 한 20대 형사는 “사건의 종결권 자체가 검사에게 있다보니 형사들의 책임감과 자부심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수당과 승진, 인력충원 등 처우 개선=근무 현실을 반영한 적절한 보상은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유인책이다. 경찰대 백창현 교수는 “미국의 경찰은 보수를 통해서 근무를 조절한다. 위험하고 까다로운 근무를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수당 차이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직무의 위험성 등이 월급이나 수당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서울 B경찰서 형사팀 막내인 30세 형사는 “월급에 찍혀 나오는 위험수당이 2만원이다. 밤에 힘들게 일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누가 형사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40대 형사팀장은 “월급이 100만원 이상 차이 나지 않는다면 강력팀이나 형사팀으로 올 젊은 형사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휘관의 관심도 중요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는 형사의 경우 초과근무 수당을 1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해 놨다”며 “이 제도가 정착되려면 형사가 눈치 보지 않고 초과근무 수당을 많이 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인력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G7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경찰 인원은 절대적으로 적다”며 “인력 확충을 통해 업무 과중을 덜면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형사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용시스템 개선 방안=젊은 형사를 늘리는 방안으로 채용 과정에서부터 형사 등 수사 인력을 별도로 뽑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순경들의 입직 연령 자체가 높아지고 있어서 순경을 거친 뒤 형사로 가면 이미 나이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프랑스 경찰은 채용단계부터 일반직과 수사직을 따로 뽑고 있다.



경찰대 김영식 교수는 “법대출신 등 법학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형사 등을 모집해 수사 전문 교육을 시켜 일선 경찰서에 배치하면 고령화를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법원 공무원들이 일정기간 법원에서 일하면 법무사 1차 시험을 면제받거나 행정사 자격증을 받는 것처럼 형사 업무에 오랜 기간 종사한 사람들에게 관련 자격증을 주는 방안도 논의해 볼만하다. 미국 뉴욕 주재관을 지낸 이주민 경찰대 학과장은 “미국은 형사의 위상이 높고 국민적 신뢰가 두터워 경찰이 되면 다들 형사가 되고 싶어한다”며 “제도 개선도 중요하지만 젊은 경찰이 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정도로 국민적 인식이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기영 이용상 김수현 유성열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