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교회의 캔버스 질박한 그림을

입력 2010-05-12 17:27


사도행전 2장 42∼47절

교회는 역사 속의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으로 표현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글로, 춤으로, 노래로, 연극으로,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모두 동원해도 모자랄 듯합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모습을 담기 위한 창조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창조성을 발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1절은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 혹은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창조의 아름다움, 경이로움, 다양성에 주의를 기울여본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런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면, 지금 우리의 시간과 상황을 잠시 멈추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감동도 없고 예측 가능한 세계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창조는 독창적이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4장 33∼34절에는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쉬운 성경)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스타일이나 방법, 가르치는 장소 또한 다양하셨습니다. 호숫가에서, 배에 올라타 앉으셔서, 다락방에서, 시장에서, 땅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가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제자들을 위해 요리를 하시면서, 기도하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조성의 가장 위대한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내어주신 사건일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그분처럼 우리 자신을 내어줄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아야만 합니다. 오직 자기희생과 완전한 포기, 깨어짐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내어줌의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창조성은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며, 가장 예술적인 행위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성령님이 권능을 부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조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창조력을 주십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진리를 전달하는 하나님의 창조적 방법에 대해서 묵상해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과일을 사용해서 아담과 하와에게 진리를 전하셨습니다. 노아에게 진리를 전달하실 때는 방주를, 아브라함에게는 어린 양을, 모세에게는 지팡이를, 다윗에게는 조약돌을, 요나에겐 큰 물고기를, 사도 바울에게는 불을, 더 나아가 예수님의 은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멸시받는 십자가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에서 우리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우리 일상의 삶이라는 수수한 질그릇에 담아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임을 말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페인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내가 ‘질그릇’임을, 즉 사실적인 것, 진실 되게 사는 것, 포장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적인 교회가 되는 길입니다.

김요한 목사 (함께하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