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신의 깜짝 한수] LG배 통합예선결승 ● 박정상 9단 ○ 왕시 9단

입력 2010-05-12 17:30


오랜만에 책상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두꺼운 국어사전을 깨워 ‘외도(外道)’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세 종류의 설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닌 분야에 발을 들여 놓는 일’ 이란다. 새삼스레 이 단어를 찾게 된 이유는 얼마 전 한 지인과 바둑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바둑계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 이미 바둑계를 떠난 사람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보면 외도라 하면 일단 그 주된 것에서 이미 빠져나와 등을 돌렸다는 뜻이 아닐까 싶은데 좀 더 생각해 보니 그 속에서도 두 갈래로 나뉜다. 칼로 베듯이 확 빠져나와 다른 분야에만 매진하는 외도가 있고, 한 발짝 빠져나와 다른 것에 눈을 돌리며 그 전공으로 삼던 것에 대해 연결고리를 찾는 외도가 있지 않을까.

물론 어느 것이 옳고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그저 그것은 본인의 만족과 선택일 뿐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려니 동쪽에서 불어오는 것도 바람이요 서쪽에서 불어오는 것도 바람이니 결국 한 길 바람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뜬금없이 서두가 길었다.

기보를 보자. 박정상 9단과 왕시 9단의 대국으로 LG배 예선 결승이다. 박9단은 바둑에 대한 투지와 열정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기로 유명하다. 초반 흑의 판단 미스로 불리한 형세였는데, 이에 연발한 강수가 몇 차례 성공을 거둬 집으로는 흑이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따라잡은 장면에서 백의 훌륭한 수법이 나온다.

실전도의 백1,3의 화두를 던지는 듯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 타법! 이에 참고도 흑1로 받으면 백2를 선수하고 4,6으로 알기 쉽게 살아버린다. 결국 당황한 흑은 6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백7로 알기 쉽게 넘어가 백의 우세. 결국 흑은 상변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 형세가 되었는데 막판에 결정적인 한 번의 찬스를 살려내지 못하며 백의 반집승으로 돌아갔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둑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몇 백판 몇 천판을 평생 두며 참 많은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 판 졌다고 해서 또 한판을 그르쳤다고 해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겐 내일 또 다른 대국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프로 4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