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선 아키노 당선… 부패 척결·경기 회복등 과제 켜켜이
입력 2010-05-11 22:02
‘정치명문가 아키노 가문의 승리.’
필리핀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故)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50·자유당) 상원의원이 당선됐다. 세계 최초의 모자(母子) 대통령 탄생이다.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는 11일 오전 8시 현재 78%를 개표한 가운데 아키노 상원의원은 40.2%를 얻어 25.5%를 획득한 조지프 에스트라다(73·국민의힘) 후보를 크게 앞섰다고 발표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라이벌 후보들도 아키노 의원의 승리를 인정했다.
◇국민은 청렴한 사람을 원했다=해외 언론은 이번 선거 결과를 현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필리핀 국민의 심판이라고 분석했다.
여당연합인 라카스-캄피-CMD의 대선후보 길베르토 테오도르(45) 전 국방장관은 중간집계에서도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과 마누엘 비야르(61·국민당) 상원의원에 이어 4위에 그쳤다.
아키노 의원이 필리핀 국민의 지지를 받은 데는 청렴한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98년 정계에 입문한 뒤 오랜 정치 경력에도 큰 공적은 없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현 정권의 부정부패, 빈곤, 폭력에 염증을 느끼면서 깨끗한 이미지의 아키노 상원의원에게 마음을 돌렸다.
그의 측근인 플로렌시오 아바드 전 교육부 장관은 “지난 9년간 부패한 정권에 질린 국민의 열망이 표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키노 의원이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갈 길은 험난하다. 혼란 속에 치러진 선거인 만큼 부정선거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가 한꺼번에 치러진 데다 자동검표 시스템을 처음 도입했다. 유권자들은 투표용지에 기표하면서 대화하는 등 선거관리도 허술했다. 자동검표 시스템으로 한 달가량 걸리던 당선자 결정이 조기에 이뤄진 게 다행이다.
취약한 정치 기반도 아키노 의원의 약점이다. 부통령 선거에서 파트너인 자유당 마누엘 마르 로하스 후보는 당선되지 못했다.
◇산적한 과제=아키노 의원은 산적한 과제를 훌륭히 수행해 ‘부모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 아버지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 항거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 암살당한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다.
현 정권의 부패 청산이 가장 먼저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아키노 의원이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는 게 성공의 가장 큰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토착 정치세력의 부정부패 척결이 1순위다.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지역색이 강해 중앙정부의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회복도 중요 과제다. 한때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서 상위권이던 필리핀이 현 정권 아래서 중·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2985억 페소에 달했고, 실업률은 7.3%로 인도네시아(7.9%)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경제학을 전공한 아키노 의원에게 거는 기대감이 큰 이유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