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형사가 늙는다-(중) 젊은 형사가 사라지는 이유] “시간 못내 애인과 헤어져”

입력 2010-05-11 18:45

“결혼하려고 부서 옮겼죠”

“여기서 1년 근무하면 다른 경찰서에서 10년 근무한 만큼 배운다.”

서울시내 경찰서 소속 A형사(30)가 지난해 초 강력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선배들이 해준 말이다. A형사는 6개월 동안 군대 신병처럼 생활했다. 식사할 때는 입천장이 델 만큼 빨리 먹었다. 힘들었지만 배울 것이 많았고 형사로서 자부심도 느꼈다. 그러나 올해 초 여성청소년계로 부서를 옮겼다. A형사는 11일 “여유시간이 없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이대로는 결혼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 배우기 힘들고, 시간은 없고, 선배들 눈치까지=젊은 경찰들이 강력팀을 꺼리는 이유는 우선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웰빙시대에 과거처럼 형사라는 사명감과 자부심만으로 사생활을 포기한 채 사건에 매달리는 젊은 형사는 많지 않다.

경찰청이 지난해 수사경과자 99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1%가 업무 강도가 가장 센 부서로 형사·마약 부서를 꼽았다. 일이 힘들다 보니 여형사는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전체 형사의 2.5%에 불과하다. 현장에서는 격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강력팀에 있는 동안 60일간 하루도 못 쉰 적도 있다.”(올 초 형사팀으로 옮긴 31세 형사)

“강력팀 형사 부인이 둘째아이를 임신했는데 혼자 아이를 돌보기가 너무 힘들다며 눈물로 쓴 편지를 보내왔다. 해당 직원을 형사 당직반으로 옮겨줬다.”(서울시내 경찰서장)

승진도 느리다. 형사가 승진하는 방법은 근속연수에 따른 자동 승진과 중요사범 검거로 인한 특진 일부를 제외하면 시험 승진과 심사 승진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외근과 야근이 많은 형사는 다른 부서에 비해 시험공부에 불리하다.

고참들로 가득한 형사팀과 강력팀의 딱딱한 분위기도 젊은 형사를 사라지게 한다. B경찰서 형사팀 김모(41) 경사는 “30대 중반 정도의 젊은 형사가 오면 고참들이 군기를 잡는다. 잘해도 나무라고, 못하면 더 나무란다. 그래서 연차가 좀 돼야 형사팀으로 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젊은 인력을 타부서에서 빼내 강제로 형사를 시키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못된다. 사명감이나 흥미가 없는 사람을 데려다 놓으면 업무 실적과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본인이 지구대나 파출소 근무를 희망해 수사경과를 신청하지 않으면 형사 발령을 낼 수도 없다.

◇3500원짜리 김치찌개 먹고, 사비 털어 수사=형사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 데는 수사비나 근무수당 등이 현실과 동떨어진데도 이유가 있다. 선배들이 사비를 털어 수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젊은 형사들이 강력이나 형사팀에 머물기는 쉽지 않다.

부산의 한 경찰서 강력팀 8명은 2008년 폭력배가 개입한 교통사고 자해공갈단 사건을 6개월간 수사해 104명을 입건했다. 그러나 유류비, 식비, 통신비 등 1280만원의 수사비가 들어갔지만 돌려받은 돈은 420만원(32.8%)에 불과했고, 나머지 860만원은 사비로 충당했다.

경찰청이 2008년 외근 형사 등 수사관 1만81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수사를 위해 지원되는 경비는 실제 경비의 54.5%에 불과했다.

수사 차량 보급률은 5월 현재 70% 수준으로 형사가 개인 차량을 이용해 수사하다가 사고가 나면 본인이 부담해야 된다.

서울 C경찰서 소속 50대 경위는 “수사비가 한 달에 30만원 나오는데 밥 세끼에 기름값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돈 아끼려고 3500원짜리 김치찌개만 찾아다니다 보니 사기도 많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수사비로 들어가는 개인비용 중 상당액은 특진한 사람이나 팀장이 메우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과거에는 부적절한 돈을 받는 게 관행이 됐었고, 최근에는 수사비가 무서워 형사가 움직이지 않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경찰 입문 연령이 높아진 이유도=젊은 형사가 사라지는 데는 순경의 입문 연령이 높아진 탓도 있다. 최근 젊은층의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순경 시험 경쟁률이 치열해졌고, 서른이 넘은 순경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순경 합격자의 평균 나이는 남자의 경우 2006년 만 25.6세에서 2007년 26.2세, 2008년 26.4세, 2009년 26.9세, 올 상반기 27.1세 등으로 4년 사이 1.5세가 늘었다.

엄기영 김수현 이용상 유성열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