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표 ‘제2 신경영’ 막 열었다… 삼성, 5대 신수종 사업 발표 안팎

입력 2010-05-11 21:57


이건희(사진) 삼성전자 회장의 신수종(新樹種) 사업 키워드는 ‘환경’과 ‘건강’이다. 이는 이 회장의 경영복귀 일성이기도 하지만 ‘제2 신경영 선언’이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다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론을 내세우며 경영에 복귀한 이 회장은 “다들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미래산업 선점론이다. 3월 24일 경영일선에 복귀한 지 48일 만에 5대 신수종 사업 투자발표로 삼성의 변신에도 시동을 걸었다.

◇이건희 회장-그룹 경영의 정점에 서다=10일 오후 6시30분 삼성그룹 사장단은 이 회장 집무실이 있는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 모였다. 이 회장은 경영복귀 이후 사장단회의를 첫 주재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든 승지원은 삼성의 핵심전략이 논의되는 상징적인 장소다.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인 김순택 부회장과 최지성 대표이사 사장, 삼성SDI 최치훈 사장과 삼성LED 김재욱 사장 등 신사업 분야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삼성이 관련 기술 등 내부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앞으로 시장성이 유망한지 등을 고려하며 구체적인 차세대 사업과 투자 규모를 집중 논의했다. 회의는 진지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밤 9시15분까지 계속됐고 5대 신수종 사업에 2020년까지 23조3000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2008년 4월 삼성 특검으로 이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은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을 좌장으로 하는 사장단협의회를 구심점으로 움직여왔다. 하지만 사장단협의회는 미래 신사업 선정이나 계열사 간 투자계획 조율 등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이번 신사업 투자결정을 통해 이 회장이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삼성은 총수를 중심으로 한 전략적 투자와 스피드경영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 행보가 더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녹색산업에 그룹의 미래를 걸다=신사업은 10년 뒤 유망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키워드는 친환경 에너지와 건강산업이다. 태양전지와 자동차용 전지, LED는 대표적인 친환경 산업이다.

이 회장은 “환경 보전과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국 정부도 녹색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와 기업들이 주목하는 녹색산업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선점 효과를 누리겠다는 뜻이다.

또 바이오 제약과 의료기기 사업은 건강 분야다. 이 회장은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 팀장(부사장)은 “2020년이 되면 환경과 에너지, 건강 등이 중요한 콘셉트일 것으로 판단해 신수종 사업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삼성이 신수종 사업 투자를 밝히면서 미래 먹거리 시장 쟁탈전도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삼성은 아직 반도체 투자 규모나 휴대전화 로드맵 등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애플 쇼크’가 전 세계 기업 환경을 뒤흔드는 상황에서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신수종 사업을 통해 현재의 위치를 공고히 지켜갈지도 주목된다.

5대 신수종 사업은 완전히 새로운 사업이라기보다 삼성이 진행 중이거나 진출을 검토하며 거론했던 사업이다. 하지만 이 회장이 직접 나선 만큼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다만 삼성 외에 다른 그룹들도 녹색에너지 분야를 사실상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어 그룹 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