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비움에 대하여

입력 2010-05-11 17:51


‘동서양의 공간인식구조를 보면 동양은 공간을 하나의 객체로 인식합니다. 즉 비어있는 게 아니라 비움 자체가 하나의 객체이자 대상입니다. 이 점이 공간을 개체와 객체의 사이라고 보는 서양의 인식구조와의 차이입니다.’

공간콘텐츠개발에 관해 들었던 강의 내용의 일부이다. 공간에 적합한 콘텐츠를 찾기 위해서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먼저 요구되는데, 이 날은 동서양의 공간 인식에 대한 차이를 엿보았다. 한 달간의 고된 업무를 마무리하는 날에 있었던 수업에 좀처럼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미사여구로 치부하거나 별다른 느낌을 얻지 못했던 ‘비움’이 몇 년 전부터 가깝고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거의 한 달간 나는 채우는 것에 몰두했다. 또한 이런 행위들만 인식의 범위에 포착되었었던 것 같다. 내가 서울을 떠나 파주에 터를 잡은 게 올해로 5년째. 파주 끝자락에 살면서 매일 자유로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이곳은 한적한 농촌이었다. 부동산사무소에서는 역세권 농촌이니, 첨단산업단지 인근이니 말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살기 좋은 시골로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5년 사이 많이 변했다. 거의 하루도 끊임없이 이뤄지는 공사는 도로를 넓혔고, 숲을 도로로 바꾸었다. 도로만큼 아파트도 많이 생겨 스카이라인이 변했다. 하천 너머로 보이던 조용했던 산은 이제 밤마다 불빛이 훤하다. 사무실 근처에서는 지자체에서 자전거 도로를 만들기 위해 나무와 풀을 뽑고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듬뿍 발라 놓았다. 심심하지 않게 나무 몇 그루를 도로 세우는 게 도시의 일상이 된 것 같다. 하루하루가 비우고 채워져 가는 게 눈앞의 모습인 것이다.

‘채움’이 진정으로 필요에 의해서일까를 생각해 봤지만 당위성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생각은 과거에 대한 미련이자 아쉬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은 비움 그 자체도 쓸모 있는 객체라는 사실에 머문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짓던 건물도 허물어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업은 계속되어 이번에는 지속가능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속가능함의 원래 의미는 무엇일까? 지속가능함이란 세대를 이어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유엔보고서는 말한다. 이 역시 당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비워 놓은 일이다.

나희덕 시인도 집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과 집주인의 이야기를 통해 비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빈집을 찾아 세를 구하러 들어간 사람에게 그 집의 안주인은 말한다. “빈집을 마음으로 쓰고 있다오.” 이에 세를 부탁했던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는 그 집에 들어갔다”고 표현한다.

비움이란 저런 게 아닐까. 세대와 세대를 이어서 마음으로 가질 수 있는 객체. 그러니 남겨두면 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업은 끝났고 나는 내 마음의 공간이었던 자리를 깨끗하게 비우고 밖으로 향한다.

김연숙 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