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성 큐티] 자녀들에게 노여움이 아니라 자존감을

입력 2010-05-11 09:38


가정의 달 특집 행복자산 시리즈(1)

골로새서 3장 21절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들이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나는 내 자녀들이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자녀양육의 방식은 대조적일 수 있다.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자아는 자존감의 회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죄인이었던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로 변화되어진 것이다.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변화가운데 가장 분명한 변화는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곧 존재의 변화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존감은 어떻게 형성되어지는 것일까? 자존감은 가족에 의해 형성되어진다. 그래서 자존감은 가정에서 가족들이 그 구성원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의 하나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은 구원의 확신과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 1976년 4월 6일, 활짝 피어난 벚꽃 위로 다가선 부드러운 햇살, 정말 따사로운 하루였다. “응애! 응애!” 불에 데어 놀란 것처럼 울어 대며 한 아이가 태어났다. 건강한 사내아이였고 평범한 부부의 평범한 출산이었다. 단 한 가지, 그 사내아이에게 팔과 다리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정상적인 출산이었다면 감동적인 모자 상봉의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출산의 고통에서 벗어난 산모에게 너무 큰 충격이 될 것으로 염려한 병원측에서 황달이 심하다고 둘러대는 바람에 어머니와 그는 한 달이 넘도록 만날 수 없었다.

드디어 모자간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 날 병원으로 오던 중에야 비로소 그가 황달이 아니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곁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이었다. 병원 측에서 그 어머니에게 아이를 보여 주던 그 긴장의 순간, 그러나 ‘모자 상봉의 그 순간’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 대성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질 것을 염려한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마디였다. 비록 팔과 다리는 없었지만 배 아파 낳은 아들. 한 달이나 만날 수 없었던 아들을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어머니에게 무엇보다도 컸던 것이다. 이렇게 성공적인 ‘모자간의 첫 대면’은 곁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의 감동 그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의 이야기이다.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오토다케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팔과 다리보다 더 좋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겨 내일을 향해 즐겁게 달려가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오토다케가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자존감은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왕따를 당할 수 있는 환경을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었다. 자녀들에게 노엽게한다면(골3:21) 우리는 자녀들을 세상에서 가장 빈곤한 영혼을 가진 자녀로 키울 것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연약함 앞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으로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가장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버지들이여, 자녀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은 값비싼 선물이 아니라 아빠의 따스한 눈빛과 부드러운 목소리, 함께 하는 시간들이 결정한다는 것을 아는가?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녀들은 자존감이 높다. 자녀들의 자존감은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연약함을 이해하고 수용할 뿐만 아니라 위로와 축복의 기도를 할 줄 아는 아버지는 자녀들의 삶에 행복한 미소를 새겨줄 수 있다.

이의수 목사 <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