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몰락, 그림 속 저항과 순종… 조선망국 100주년 추념회화전

입력 2010-05-11 17:42


달빛 아래 풀밭에 처량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개를 그린 조석진(1853∼1920)의 ‘월하수구’(月下睡狗), 부리부리한 눈매와 우락부락한 얼굴로 망루 난간에 기대어 있는 이충무공을 그린 안중식(1861∼1919)의 ‘한산충무’(閑山忠武), 한양 죽동(지금의 인사동) 본가를 천 번이라도 찾아가고 싶은 바람을 담은 민영익(1860∼1914)의 ‘석죽’(石竹)…. 조선 왕조가 국권을 상실한 100년 전 시대상을 상징하는 그림들이다.



해마다 봄 가을이면 기획전을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해 봄 정기전으로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당시의 미술을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조선망국 100주년 추념회화’ 전이라는 타이틀로 1910년에 60세였던 서병건(1850∼?)부터 25세였던 고희동(1886∼1965)에 이르기까지 당시 화단에서 활동한 작가 28명의 작품 100여점을 통해 어지러웠던 시대를 조명한다. 전시는 일본에 대한 저항과 순종이라는 두 가지 흐름에서 구성됐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의병활동에 참가한 김진우(1883∼1950)의 ‘묵죽’(墨竹)은 화면 가득한 생명력으로 일제의 억압에 굴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출함과 동시에 앞날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고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홍철주의 아들인 홍림(1882∼?)의 ‘회모작희’(回眸雀稀-눈자위 돌리니 참새 드물다)는 가지 위에 앉아 한쪽 발을 든 채 눈을 돌려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있는 매를 그린 것으로 작품 속에 항일정신을 새겼다.

그런가하면 대세를 따라 일본에 동화된 화가들도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행원을 지냈고 매국에 앞장섰던 황철(1864∼1930)의 ‘해산추범’(海山秋帆-해산의 가을 돛배)은 일본풍이 물씬 풍겨난다. 반면 중국에서 미술을 배운 김규진(1868∼1933)의 ‘청산불로’(靑山不老-청산은 늙지 않고)는 일본에 저항하긴 했지만 중국에서 예술의 길을 찾은 경우였다.

어지러운 세상과 절연하는 것도 화가들이 택했던 또 하나의 길이었다. 이경승(1862∼1927)이나 서병건 등은 복잡한 세상사와 등을 돌린 채 나비 그림을 그리며 지냈고 왕실 후손인 윤용구(1853∼1939)나 지운영(1852∼1935) 같은 작가는 은둔하며 그림으로 울분을 달랬다. 또 민영익은 이른바 ‘운미란’(云楣蘭)이라 불리는 고유한 묵란화를 개척해 추사 계통의 묵란화와 다른 난법을 확립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조선말기 화단의 큰 줄기는 궁중 화가 안중식과 조석진으로 대표되는 전통 미술의 계승이었다. 이들은 1912년 ‘서화미술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전통을 계승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중국화를 우리 식으로 해석한 오원 장승업의 화풍을 답습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이들의 노력은 이도영(1884∼1933)에서 대가 끊기고 서양화를 배우고 돌아온 고희동에 이르러서는 서양화와 한국화를 섞은 새로운 양식이 출현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회화가 그 시대 총체적 문화역량을 반영한다고 할 때 조선망국기 미술 역시 정신없는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우리 전통을 잇는 작가와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에서 공부를 한 작가가 혼재하는 한국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부터 30일까지 무료 전시(02-762-0442).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