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환 한나라당 의원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입력 2010-05-11 15:20
시골에서 공부를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서울의 중학교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다. 3번이나 떨어졌다. 휘문중학교 시절 홍제동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중등부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학교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에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꼭 들어가게 해 주세요.” 매일 새벽기도를 드렸다. 가정 형편도 어려웠지만 학업성적도 탁월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등부 학생회장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꼭 붙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경복중학교가 폐교되면서 경복고는 200명을 추가로 뽑았는데 경쟁률이 13대 1이라고 했다.
“주님, 제가 떨어지면 교회에서 얼마나 실망할까요. 교회생활을 열심히 해도 시험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해주세요.” 결과는 의외였다. 내 친구는 공부를 잘했지만 떨어졌다. 나만 합격을 해 너무 안타깝고 미안했다.
고교시절에도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변론반, 유도반, YMCA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했다. 과외 활동을 많이 해 우수반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교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는 영광도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에 매달렸다. 반장이라 반의 명예도 있고 해서 모든 노력을 공부에 집중했다. 다행히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즈음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다. 서울대병원에서 내가 폐결핵에 걸렸다는 진단서를 발급한 것이었다. 당시 폐결핵이 있는 사람은 입학이 제한됐고 입학이 되어도 휴학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대학입시에 실패한 후 고향인 경북 봉화에 내려가서 요양 겸 휴식을 했다. 당시 고향의 집과 교회는 나의 삶과 신앙의 산성과 같았다. 4개월간의 안식과 기도생활을 하는 동안 건강이 회복됐다. 신앙심도 더욱 깊어졌다. 다시 서울에 올라와 학원도 다니며 입시준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련은 끝이 없었다. 함께 생활하던 형수가 연탄가스 사고로 돌아가시고 누나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독서실로 거처를 옮겼다. 그 전에 가족의 상실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나는 ‘혹시 이렇게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서울대 입학시험을 보던 날이었다. 시험을 치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마치 비 오듯 뚝뚝 떨어져 답안지가 젖었다. 시험지가 젖어서 혹시 문제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시험을 마치고 학원에 돌아와서 전보를 받았다. ‘13일 부 사망’ 내가 시험을 치기 전날 나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시험에 방해가 될까봐 알리지 말라고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시험 시간과 휴식시간에 왜 그렇게 눈물이 흘렀는지를 나중에 알게 됐다.
대학생활을 참 어렵게 보냈지만 절대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루라도 접은 적이 없었다. 지방선거에 출마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 강동구청장을 지냈다. 주님은 시련 중에도 항상 나를 지켜주셨다. 큰 어려움에 직면할 때면 저절로 나오는 찬양이 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통 384장)라는 찬송가다. 이 찬송가는 연약한 나를 잡아주고 밀려오는 불행을 대신 막아주고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마침내 2004년 17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8년에는 재선 의원이 됐고 입법정책 최우수 국회의원 상을 받았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언제나 성공보다는 실패를 먼저 알게 하시는 분이다. 최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하는 과정에서도 큰 교훈을 얻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 해도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리=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