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상의 성경과 골프(55)
입력 2010-05-11 09:50
죽어야 살리라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6)
K실업 P사장은 80대 스코어를 처음 맛보고 골프에 대한 혜안이 뜨일 무렵인 몇 년 전 불운하게도 교통사고로 큰 수술을 받고, 무릎 속에 철심까지 심었다. 조심스럽게 재활훈련을 하던 중 의사의 권유로 걸어서 18홀 라운드에 도전하게 되었다. 연습을 다시 시작했지만 공백이 길었던 터라 “오늘은 아무 욕심 없습니다. 단지 18홀을 무사히 걸어서 마치기를 바랄 뿐입니다”라며 준비하여 온 보호대를 무릎에 찼다.
몇 달만에 친 그의 첫 티샷은 약 200야드 이상 날아 페어웨이에 안착했고, 세컨드 샷은 그린 주변에 잘 갔으며, 어프로치 후 투 퍼팅으로 쉽게 보기를 잡았다. 마음을 비운 플레이는 교통사고 전의 스타일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과거에는 첫 티샷이 대체로 잔뜩 힘이 들어간 짧은 훅 샷이었고, 세컨드 샷은 잃은 거리를 만회하려고 무리수를 두었고 계속되는 실수로 겨우 4온하여 더블보기에 급급했던 그가 아주 편한 보기 스타트를 한 것이 상급자 수준의 전략 같았다. 홀이 거듭될수록 그의 티샷은 방향이 좋아졌고 거리도 조금씩 늘기 시작하며 보기 둘에 파 하나의 안정된 플레이를 보였다.
난이도가 높은 13번 파5 홀에서 그의 티샷은 230야드 이상 멋지게 날았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P사장은 힘차게 우드 세컨드 샷을 날렸다. 그러나 오른팔 액션이 강한 탓이었나, 클럽이 클로즈 된 듯 볼은 좌측 오비 지역으로 날아가 버렸다. 잘 맞은 티샷 이후 그의 기대가 커졌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근육이 긴장된 것으로 보였다.
그는 다시 태도를 바꿔, 1번 티 그라운드의 초심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 플레이로 14번 파3 홀에서는 파를 잡았고, 좋은 리듬은 유지되었다. 15번 홀은 좋은 티샷, 그린을 살짝 미스한 세컨드 샷에 이어, 어프로치는 무난하였으나 퍼팅을 놓쳐 다시 보기를 하였고, 16번 파4 홀에서는 좋은 티샷에 이어 그림 같은 미들 아이언 세컨드 샷으로 버디를 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큰 기대를 걸지 않고 그저 18홀을 마칠 수 있기만 바랬는데,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80대 중반의 라이프 베스트 스코어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함께 라운드 한 싱글 핸디캐퍼들을 제치고 17번 짧은 파5 홀, 그는 자신이 아너가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회심에 찬 티샷은 힘차게 맞았으나 훅이 걸리면서 아깝게도 오비 라인을 살짝 넘었다. 특설 티에서 친 제4타는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슬라이스가 나며 또 OB. 재앙은 몰려다닌다더니, 가장 쉽다는 그 파5 홀에서 P상무는 결국 더블 파를 기록하며 정말로 혹독한 버디 값을 치른 것이다. 마지막 홀 티샷은 또 한 번의 훅이 되었고, 세컨드 샷은 나무를 맞고 벙커에 빠졌다. 이미 물 건너간 80대 스코어라,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그는 벙커 탈출에만 주력하였고, 안전한 벙커 샷과 투 퍼트로 보기를 기록하였다. “세상에 이렇게 보기가 쉬운데!”
92타로 라운드를 마친 P사장은 16번 홀의 혹독한 버디 값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맞습니다. ‘죽으면 살리라’이지요. 욕심을 버리고 한 타 한 타 겸손하게 쳤을 때 ‘나 죽었소’ 하고 고개 숙였을 때 골프는 미소를 지었고, 버디 잡고 교만해졌을 때, 그러니까 살았다고 고개 들었을 때 골프는 나를 외면하여 버린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이고 골퍼들이라면 이와 비슷한 경험이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경험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에도 그런 실수가 여전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난로에 손 데이고 돌아서서 또 데이고….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16:5)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