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형사가 늙는다-(상) 형사 고령화의 실태] 마흔에도 막내소리… 잠복은커녕 당직도 버겁다
입력 2010-05-10 22:02
형사 고령화는 발로 뛰는 젊은 형사와 경험이 많은 고참 형사의 인적 균형을 깨면서 젊은 인력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범죄 조직은 젊은 피를 수혈해 빠르게 변화하는 반면, 형사 조직은 동맥경화증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서른 살에 강력팀에 들어온 형사가 10년이 지난 마흔 살에도 여전히 막내인 경찰서가 비일비재하다.
◇40세 형사가 13년째 막내=서울시내 경찰서 형사팀 소속 이모(40) 경사는 형사팀에서만 13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형사는 13년 전과 똑같이 지금도 형사팀 막내다. 그는 “올해 초 34세 형사가 들어오기 전까지 37세 형사가 경찰서 3개 형사팀의 막내였다”며 “요즘엔 실적을 채우느라 운동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조직 폭력 사건을 비롯해 살인 강도 등 강력 사건을 주로 다루는 강력팀도 예외는 아니다. 20, 30대는 고사하고 아예 40대로 꾸려진 팀들이 적지 않다.
서울 B경찰서 강력팀의 경우 경위 팀장은 50대 중반이고, 팀원들은 43세, 42세, 41세, 40세다. 팀장을 제외한 팀원 평균연령은 만 41.5세다. 서울 C경찰서 강력팀도 50대 초반 경위 팀장 아래에 45세 2명, 40대 초반 두 명이 있다. 잠복근무는커녕 야간당직도 버겁다.
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을 이루는 순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D경찰서의 경우 강력 6개팀 중에서 순경은 30대 초반 1명뿐이다. D경찰서 소속 40대 형사는 “우리가 20대 때는 서로 형사 하려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당시엔 순경이 한 팀에 2∼3명은 있었다”고 말했다.
◇떨어진 기동력, 현장 수사력 약화 부른다=강력팀과 형사팀이 수사의 효율성을 발휘하려면 고참 형사의 지혜와 경험, 젊은 형사의 체력과 기백이 균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 고령화된 조직은 노련하지만 기동력은 떨어진다. 인터넷 범죄 등 신종 수법에 대한 적응력도 느리다.
서울시내 강력반 소속 한 40대 형사는 책상 밑에 아령을 두고 틈만 나면 팔운동을 한다. 그는 “솔직히 현장에서 젊은 애들이 도망가면 못 쫓아간다. 때문에 한 번 목덜미를 잡으면 놓치지 않고 바닥에다 메다꽂기 위해 팔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젊은 형사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른바 ‘꾸미’라고 부르는 잠복근무 때문이다. 잠복은 체력이다. 그리고 기동력이다. 젊고 팔팔한 형사들이 현장을 덮쳐야 한다. 나이 든 형사는 강도를 만났을 때 총이 있어도 검거를 못한다.”(강력반 15년 경력의 50대 형사팀장)
실제로 젊은 형사들은 장기간 잠복근무나 현장 검거에서 실력을 발휘한다. 전북 군산경찰서 강력팀 백모(36) 경장은 지난 3월 부녀자 22명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 30대 회사원을 5개월간의 잠복근무 끝에 붙잡았다. 백 경장은 공로를 인정받아 경장에서 경사로 1계급 특진했다. 서울 성동지구대 소속 한 순경은 지난 3월 초 수배 중인 강도강간 피의자를 발견한 뒤 700m를 쫓아가 격투 끝에 검거해 현장 검거의 중요성을 증명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 수사 맥이 끊길까 우려=일부 경찰서들은 최근 형사 고령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과감한 쇄신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 관악서의 경우 지난 3월 초 강력팀과 형사팀에서 50대 전후의 데스크반장급 고참 형사 10명을 교체했다.
관악서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사건 발생 대비 검거율이 낮아진 것이 수치상으로 확인돼 쇄신 차원에서 이번 조치를 취했다”며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역동적인 분위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악서는 형사를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적당한 사람을 채워 넣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형사들이 젊어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젊은 형사들만 있으면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큰 사건이 닥쳤을 때 우왕좌왕하기 쉽다. 정보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참들이 한 수 위다. 서울 모 경찰서의 경우 2008년 인력쇄신 차원에서 고참 형사를 교체한 뒤 강력팀 실적이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강북권 경찰서의 40대 후반 형사는 “제대로 된 형사 한 명 만드는 데 10년 걸린다. 명맥이 끊기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젊은 형사와 고참 형사의 인적 균형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엄기영 유성열 이용상 김수현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