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금융 충격] 트리셰 유럽중앙銀 총재의 결단

입력 2010-05-10 18:43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게 지난 며칠은 수개월처럼 길었다. 그는 최근 며칠 동안 그리스발 금융위기 타개에 수차례 역할을 주문받았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내세우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그가 10일 유로존 위기를 구하겠다는 성명을 마침내 발표했다. 중앙은행 독립주의자의 입장 번복은 ‘그리스발 바이러스’의 전염 강도가 그만큼 심각함을 방증한다.

트리셰 총재는 프랑스중앙은행 총재 출신으로 2003년부터 ECB 사령탑을 맡고 있다. 그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철칙으로 삼는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그리스발 위기로 그 원칙을 지키기가 벅찬 상황이 됐다. 정치권과 시장이 모두 ECB의 개입을 촉구하며 협공했다. 시장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유로존 국채를 ECB가 매입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스발 금융위기의 뇌관을 해결할 수 있는 ‘핵폭탄급’으로 여겨지는 조치다. 그럼에도 트리셰 총재는 지난 6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ECB 금리회의에서 이를 묵살했다.

브뤼셀에서 7일 열린 EU정상회의에서는 EU 정상들이 대놓고 그를 ‘압박’했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ECB의 역할론으로 그를 몰아세웠다.

그는 이번 위기 타개가 자신의 경력에 얼마나 중대하고, 그 같은 조치로 인플레 유발 등 지불해야 할 대가가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재무장관들이 9일 긴급 마라톤 회의를 하는 늦은 밤까지도 “트리셰가 위기의 한가운데 서서 정치적 개입에 저항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밤새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ECB는 10일 오전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려 “필요할 경우 유로존의 국채와 민간 채권을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