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진홍] 한·미관계 꼼꼼히 챙길 때다

입력 2010-05-10 17:48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기… 미국과 마찰 빚으면 외양간 제대로 고치기 어려워”

# 1968년 1월, 한반도에 위기가 닥쳤다. 북한 124군부대 소속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세검정 고개에서 저지당한 이른바 ‘1·21 서울침공’ 사태가 일어나고, 이틀 뒤인 23일 미국 정보선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대응 방안 마련에 들어간 한·미 양국의 입장차는 컸다. 박정희 대통령은 1·21사태 주범인 특수부대 근거지에 대한 포격을 주장하며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북한이 재도발할 경우 보복공격을 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미국 측에 요구했다. 1·21사태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던 미국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발발하자 항공모함까지 출동시키고도 무력 보복에는 반대하며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맞섰다.

양국의 최종 선택은 ‘비밀협상’이었다. 그 결과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11개월여 만에 무사히 송환됐다. 1·21사태에 대한 응징은 없었다. 미국은 한국을 달래려 1억 달러의 특별 군사 원조를 약속했다.

60년을 맞은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나라의 버팀목이다. 그러나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면 갈등을 빚기 일쑤다. 1968년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중시해야 하는 처지이고, 미국은 세계 전략 차원에서 한반도를 바라본다는 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 천안함을 공격한 세력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46용사’를 영원히 보낸 터라 적에게 어떻게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하는가가 남은 과제다. 때마침 한·중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려 한반도 주변 정세가 출렁이고 있다. 우리가 중국에 선수(先手)를 치자, 북한이 곧바로 판을 뒤집어버렸다. 한·중관계보다 북·중관계가 한 수 위라는 사실이 입증됐고, 한·미와 중국은 천안함 및 6자회담을 둘러싸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천안함과 관련해 향후 국제 여론을 주도해야 하나,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들이다.

이럴수록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는 게 필요하다.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다시 꼼꼼히 챙겨봐야 한다는 얘기다. 1968년 한반도 위기 때처럼 이번에도 양국 간에 균열이 생기면 북한과 중국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판세를 뒤흔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공조가 허술해지면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의 입김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두 나라 사이에 놓인 현안들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미국 외교라인과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반드시 핵을 포기토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 내 일각에서 북한이 핵을 확산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의견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흘려듣지 말고, 미국의 북핵정책 핵심이 폐기 대신 비확산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명박 정부에게는 엄청난 시련일 것이다. 미국과 호흡을 맞추자니 지지층인 보수세력의 반발을 살 것이 뻔하고, 지지층을 의식해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자니 북핵 해결 과정에서 소외될 소지가 있는 탓이다. 정부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겠지만, 작금의 흐름으로 볼 때 외면만 해선 곤란하다. 천안함과 북핵 6자회담을 별개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는 견해도 주시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녹록지 않다. 2007년 6월 타결됐으나 오바마 정부의 재협상 요구에 부닥쳐 3년이 다 되도록 비준되지 않고 있다. 정부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자니 국내에서 반미 분위기가 이는 것이 부담이고, 마냥 거부하자니 미국과의 우애에 금이 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형국이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 또한 미국이 변수다. 미국이 우리 측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FTA나 북핵 문제에서 우리의 양보를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있다. 세밀한 대책이 필요한 까닭이다.

천안함 참사 수습책을 내놔야 하는 지금부터가 훨씬 중요하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한·미관계를 소홀히 했다가는 외양간이 더 망가질 수 있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