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눈 감으면 코 베인다

입력 2010-05-10 17:47


‘눈 감으면 코 베어 먹을 세상.’ 세상 인심이 몹시 험악하고 각박하다는 뜻이다. 비슷한 것으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도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믿을 만한 사람이 배반하여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진부한 속담을 이렇게 꺼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소중한 내 건강과 내 재산을 지키려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자칫 한눈팔면 코 베일 일이 요즘 의료계에서 빈발하고 있다.

바로 보름 전에 간접 경험한 일이다. 4∼5번 요추관절이 약 50% 어긋난 척추 전방전위증 환자 이모(54·여·충북 청주시)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동네의 CW병원을 찾았다가 낭패를 겪었다. 지인의 소개를 받았음에도 치료비가 무려 680만원에 이르는데다, 그 절반가량인 300만원을 입원 보증금으로 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수술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묻자 그것도 10% 깎아준 것이며, 수술 시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외제 나사못을 써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란다.

총 진료비가 1000만원 안팎에 이르는 척추 수술비 가운데 환자 부담금은 보험 적용 시 보통 350만∼450만원 수준이다. 척추외과 전문의들은 이 역시 병실 차액료를 물지 않는 다인 기준 병실을 사용하고, 검사를 최소화할 경우 약 250만원까지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보험 적용이 가능한 재료를 놔두고 굳이 고가의 비보험 재료 사용을 환자들에게 권하는 행위, 더욱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신의료기술’ 승인도 받지 않고 어떻게 이런 행위가 버젓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일까.

그 비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즉 보험자 부담금 청구를 포기하는 데 있다. 건보공단에서는 보험재정 아껴서 좋고, 병원 측은 환자로부터 바로 실비 정산할 수 있으니 속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일 것이다. 게다가 적정 진료 여부를 판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해당 병원의 진료비 심사 청구 자료가 없다며 실태조사도 않고 ‘나 몰라라’ 눈감아 준다.

건강보험은 건강할 때 매달 보험료를 내고, 몸이 아파 목돈이 필요할 때 그 보험금으로 값싸게 치료를 받자는 제도다. 국내 병의원은 예외 없이 요양기관으로 강제 지정돼 있다. 따라서 돈이 안 된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보험 환자를 기피하거나, 비보험 진료를 강요할 경우 법(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꼭 법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비단 CW병원뿐이 아니다. 서울 강남에선 지금 유명 대학병원 교수까지 지낸 K병원 K원장이 일체의 보험진료를 거부해 원성이 높다. 환자들에게 비보험 공정가격 1000만∼1200만원을 내든지, 아니면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험자와 보건 당국은 청구 및 심사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고발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 병원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그야말로 눈감으면 코 베이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세상인 셈이다. 결국 환자들은 믿고 존경해야 할 의사가 혹시 부적절한 의료행위를 하는 게 아닌지, 스스로 감시하고 자구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심평원(www.hira.or.kr)이 제공하는 ‘진료비 확인 신청’과 ‘본인부담 적용 및 병원 표준 진료비 정보’ 안내 서비스를 통해 적정 진료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 평가 결과 해당 병원의 진료비 부당 징수 사실이 밝혀지면 그 금액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 아울러 그 병원이 소재한 지역 보건소 의약계에 과잉진료 행위에 대한 민원을 서면으로 제출하거나 인터넷으로 제기해 병원 측에 영업정지 등의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 이유는 적절한 검사와 치료를 받고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과잉진료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일부 의사들의 빗나간 상술이 다른 양심적인 의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나아가 그들까지 오염시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자고로 좋은 것은 천천히, 나쁜 것은 빨리 배우기 십상인 게 우리 세상 아닌가.

이기수 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