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發 금융 충격] “제2 리먼사태 안 된다”… 정부, 불안심리 차단 총력
입력 2010-05-09 19:27
일요일인 9일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 건물은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금융위는 오전 9시 출입기자들에게 이날 오후 2시30분 비상금융합동대책반 회의가 열린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권혁세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실무진이 참석하는 회의였다. 비상대책반 회의는 지난 7일에 이어 2번째였다.
2시간쯤 지난 오전 10시58분 금융위는 급하게 수정 메시지를 보냈다. 비상금융합동대책반 회의가 관계부처 차관급 회의(경제금융상황 점검회의)로 변경됐다는 내용이다. 참석자는 금융위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차관, 한국은행 부총재, 금감원 수석부원장으로 바뀌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8일 밤에 연락을 갖고 차관급 회의로 격상하기로 했다. 재정부, 한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신속하게 사전 대응하는 차원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긴장하는 정부=회의에 앞서 모두발언에 나선 임종룡 재정부 차관은 금융시장 상황을 “과도한 우려”라고 압축해 표현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33.8%, 외환보유액 2788억7000만 달러, 총 외화채무 가운데 단기외채 비중 37% 등 우리 경제의 구체적 수치까지 언급했다. 이어 “그리스 지원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등 근본적 대응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충분히 시장에 알려 불안해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미세한 인식의 변화는 감지되고 있다. ‘제한적’이란 스탠스는 유지하면서도 대응 움직임은 한층 바빠졌다. 내심 긴장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정부는 실체 없는 공포에 휘둘리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증폭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국인이 지난 7일 증시에서 1조2347억원에 이르는 주식을 내다파는 등 충격파가 예상 외로 거세지고 있다. 외국자금이 증시와 채권시장에서 일시에 빠져나가면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이 만만찮다. 외국인은 상장 주식의 30%를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은 채권시장에서 올 들어 지난달까지 순매수 금액 27조1852억원을 기록했다.
◇‘외환 핫라인’ 재가동=정부 내에서는 이번 재정위기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판박이’가 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에 국내 금융회사들과 직접 거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느슨하게 대응하다 외환 부족이라는 낭패를 본 아픈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특별히 외화자금 시장 동향을 눈여겨보고 있다. 우리 외환시장과 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된 탓에 외국인 자금이 쉽게 들고 나면서 국내 시장을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과 외환 핫라인을 재가동하기로 한 것도 급격한 외화자금 유출에 따른 외화 부족 사태를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금융권과 공동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차입금 규모, 외화자금 유출입, 대외차입 여건 동향, 은행별 자금조달 계획, 펀드 환매 동향 등을 매일 점검할 계획이다.
임 차관은 회의가 끝난 직후 결과를 직접 설명하면서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진 않는다. 국내 은행 단기외채 비중을 낮추는 작업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에서 출발한 재정위기가 동유럽 국가에 전염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성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유럽 재정위기의 경제적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동유럽 국가들이 서유럽에서 조달하는 자금이 전체 차입액의 90%를 차지한다. 사태 악화로 서유럽 국가들이 자금 회수에 나서면 대외 채무가 많은 동유럽 국가가 연쇄 부도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